-'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종영,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 시작-
복고 바람이 드라마에도 불고 있다. TVN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이어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대작을 내세워 복고 몰이를 하고 있다. 물론 나도 마침 오미크론에 사로잡혀 집안 유폐 생활을 하고 있기에 핑계 좋게 시청자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미 나이대별로 국민들을 묶어 한바탕 울렸더랬지만, '응답하라 1997'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 할 때도 된 것 같다. 방송에서 10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다시 우려낼 만큼의 긴 시간인가 보다.
복고에도 인구수의 비밀이 숨어 있는 듯하다. 복고물들이 누구의 추억을 주로 건드리고 있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일단 응답하라 1997 주인공 성시원과 윤윤제,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 나희도. 그들은 지금 딱 대한민국의 중간에 서 있다. 1997년 IMF를 고2(응7)나 고1(나희도)에 맞은 세대. 2020년 중위연령, 즉 대한민국 사람 전체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의 나이가 만 43.6세라니 2022년 현재 중위연령도 만 43세라면 아마 1979년생 일 거다.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97년에는 3학년. 가장 예민할 청소년기에 부모님을 통해 IMF를 간접 경험하고 20대 초반 월드컵을 즐긴 세대.
한편, 우리들의 블루스의 시작을 이끄는 차승원과 이정은은 대한민국 최대 인구수를 자랑하는 70년생(70, 71 모두 100만을 넘고 71년생이 조금 더 많긴 하단다)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많은 인구가 친구뻘인 주인공들과 함께 과거 순수했던 시절 수학여행의 첫 키스와 풋사랑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의 젊은 날은 대한민국이 욱일승천하던 시기여서 비교적 쉽지 않았냐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것은 바로 전 86세대의 이야기. 이들은 입시도 어렵게 치렀고, 군역을 치른 남성의 경우 취업 시장에 나왔을 즈음 IMF에 휩쓸렸을 가능성이 높은 세대이다.
시대가 특정 세대의 경험을 강하게 규정할 때가 있다. 특히나 입시, 취업과 같이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던 해에 불황이 몰아닥친다면 그 세대는 그 시기뿐 아니라 일생에 걸쳐 내내 고생하게 된다. 취업 적령기에 좁아진 정규직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IMF는 비정규직이란 말이 생겨난 시점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이 두 세대는 그 영향을 직접 받은 세대이다.
나는 IMF를 학창 시절 맞이했다. 돌이켜보니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서둘러 공장을 접었고, 나도 잠시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매대 앞에 선 적은 있었지만, 학원도 독서실도 무탈하게 다닐 수 있었다. 생계의 바통은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로 넘어갔다. 어머니는 같은 해에 보험설계사로 거듭나셨다. 거리에는 유학을 떠났다가 환율을 견디지 못해 돌아온 또래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맥도날드 앞에서 휘시버거가 아닌 fishburger를 주문하고 있었다.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원어민 발음이 점점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빼어난 드라마들이 튀어나온 맥락을 더듬기 위해 굳이 인구와 세대를 들먹였다.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소구하려는 세대를 참 잘 잡았다는 뜻이다. 해당 인구가 일단 많아 시청자 확보가 가장 용이하다. 그리고 시대의 상흔이야 전 인구 연령층에게 남아있지만, 그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세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중위 세대들의 이야기인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주로 빛나던 그 ’어린 시절‘을 그려낸 반면, 이제 시작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50대로 접어든 ’바로 지금‘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동창회를 생각해 보면 쉽다. 40대 초반의 세대는 일터에서 가장 열심히 일할 시기,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도 성장기여서 육아에도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당연히 동창회가 열리기조차 어렵다. 설레던 그 시기로 직접 가야 한다. 반면, 50대는 슬슬 동창회가 활성화되는 시기이다. 사회적 지위로도 서서히 피라미드의 상위로 가면서 조금씩 외로워진다. 가정이 있더라도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친구들을 찾는다. 당연히 50대는 친구가 그립고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찾는 시기이다.
변명이 길었다. 사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결말을 두고 새드엔딩이니,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느니 하는 아우성에 대한 변명이다. 지금 삶이 버거운 중위연령 세대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는 이뤄지지 않은 그때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 세대에겐 그 시절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사랑의 결실을 보아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얼버무리기엔 지금이 좀 힘들거든. 그 시절은 '현재와 단절'된 채 아름답게 남아있어줘야 하는 것이다.
주변 인물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착하고 아름다운 것도 그렇다. 그들이 마주해야 하는 주된 관계는 비즈니스다. 살벌하고 타산적이다. 인맥이 자산이고 끼리끼리 뭉쳐야 한다. 그래서 석차를 전시하고 성적과 품행을 동일시하던 학교 안에서 전교 1등과 전교 꼴찌가 절친이 되는, 당시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상향이 필요한 것이다. 마냥 이타적이고 착하기만 한,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들의 판타지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앞으로 전개될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시 만난 친구들끼리 어깨 걸고 연대하며 시절을 건너오며 입은 상흔들을 보듬고 안아주며 치유해 나갈 것이다. 그 우정의 힘으로 드라마를 밀어갈 것이다. 어려움과 희생을 유독 많이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고, 이제는 '가족과 미래'가 아닌 '나'와 '오늘'을 찾을 권리가 있는 세대이기에 드라마가 그릴 시점도 지금의 그들이어야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잠시 행복했다. 그 시절이 빛나는 것은 뇌나 신경계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냥 호르몬들이 뭐든 폭발하는 시기이니까. 학업 부담에 허덕이면서도 짝사랑이며, 평생 갈 우정이며, 독서실 앞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던 끝없는 대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통신 수단이 마땅찮았던 당시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했다. 다이어리 속지부터 전지까지 다양한 크기의 편지지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던 손편지며, 독서실 공중전화통 앞에서 확인하던 삐삐 음성메시지가 주된 메신저였다. 삐삐를 소지했던 기간은 2년 남짓이었지만, 그 시절 012, 015, 01577로 시작하는 번호 몇 개는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다행히 과거를 회상하던 나희도는 지금 아틀리에를 열고 목재에 정성껏 기름을 펴 바르고 있다. 삶의 정점에서는 내려왔지만 새로운 세대를 길러가며 자신의 뜨거웠던 시절을 빼곡한 손글씨로 전수해 주고 있다. 더 큰 프레임에서 보면 할머니에서 어머니, 손녀로 대를 이어가는 이야기가 여성 3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안토니아스라인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파국으로 치닫기 일쑤인 남성 주인공들의 대결에서 비켜나서 여성들의 우애로 마무리한 라이벌 구도도 빛났다. 그런 사소한 설정들도 기억되었으면.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시작될 50대들의 블루스도 기대된다.
(2022.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