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덕분에 피해의식이 이제 좀 지겨워졌다.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by 혁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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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어쩜 이리 글을 잘 썼을까. 암에서 막 기어 나와 겨우 정신을 차리려는 상황은 나와 똑같은데. 애꿎은 내 글이 부끄러웠다. 방송인으로만 알았던 그는 알고 보니 글쓰기를 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더라. 그는 내 또래이나, 또래라고 보기 어려운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게 놀랍고도 질투가 나서, 가끔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책이나 영화로 성찰하고, 와병 중의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일으켜 세우는 말을 발견해 내는 그를 조금씩 따라 해보았다. 그 결과가 지금 나의 블로그이기도 하다.

악성림프종, 고형암과는 달리 무균실에서 항암을 해야 하는 그 병의 치료는 수술을 해야 하는 내 경우와는 달랐다. 항암의 고통이 나와 비교할 수없이 컸을 터였다. 어찌 보면 자신의 경계를 지켜주던 병력들을 자발적으로 멸절시키고 무균실에 누워있는 경험은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는 경험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그도 요가를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경험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지. 항암 중에 그 차고 단단한 바닥이 올라와 뼈와 부딪는 경험은 분명 비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망했다는 고백부터, 삶의 바닥을 훑어 내리는 그의 시선은 영화는 물론 문학과 인물, 사건으로 렌즈를 바꿔가며 넘어진 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내면의 토대를 다져가야 할지 보여주었다. 때로는 단호하고 직접적인 말로, 때로는 은근한 경험담으로. 이따금 꺼내듣는 그의 말은 특히 통증과 불면, 피로가 번갈아 찾아올 때 찾게 되는 비상구 램프 같은 효험이 있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라는 제하의 결론부는 뻔한 말일지 모른다. 사실 그런 유의 말이 당시엔 지긋지긋했다. 내 처지를 알 길이 없는,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위로라며 건네는 금언들은 모조리 내 인내심에 대한 테스트였다. 측은지심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고까웠기 때문이었다. 삶이란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지만, 적어도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새로운 시작을 견뎌낼 체력과 시간이 넉넉한 이들이 주워섬기는 새로운 시작 운운은 그저 비겁했다. 내게는 그렇게 인생을 관조할 여력이 없었다.

어떤 말이냐 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했다. 모르는 이가 하는 말이 튕겨져 나간 만큼, 같은 부류의 위기를 경험한 이가 하는 말은 별다른 부연이 없어도 진실처럼 흡수되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진부하지 않았다. 특히 스타워즈의 프리퀄을 소개하며 피해의식과 결별하라고 주문하는 그의 말은 숙제로 남았다. 그는 청년 세대 일반을 위해 꺼낸 말일지 모르겠지만, 동년배인 내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나에게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읽은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그의 책에 대한 독후감을 이제서야 쓰는 것은, 이제야 그 숙제를 조금은 한 것 같은 기분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이며 문체까지 꾸준히 따라 하며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 불행을 자신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말들을 계속 쌓을 수 있었다. 덕분인지 이젠 매일 비련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내가 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반복적으로 써먹던 절망도 이젠 진부하고 유치해졌다. 실제 생활 속의 나는 자주 웃는데, 글 속에서는 여전히 어둠을 팔고 있는 것도 괴리감을 키우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전보다 조금 기운 없을 뿐이다. 대신 위태롭던 호흡과 맥박은 제자리를 찾았다. 장기들의 자리를 빼앗아가며 총체적인 위기를 몰고 왔던 복부 내장지방도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항암이 할퀴고 간 혈액 수치도 이제 정상 범주로 들어왔다. 암세포는 조금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투병의 한 챕터가 끝나간다고 믿는다. 다음 장은 아마도 내일 다시 이 병이 찾아와도 후회 없을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다음 장이 되도록 길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가며 용기를 냈던, 내 또래의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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