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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일기17> 일요일은 정리하는 날

by 혁이아빠

일요일은 재생산 노동의 날. 한 주간 발생한 허물을 벗어버리고 다음 한 주를 준비했다. 감기로 방구석에서 회복 중이지만, 살림한 덕분에 집에서나마 몸을 놀리고 나니 뭔가 한 것 같아 뿌듯.


혁이와 의무방어전 장기 한판 딱 두고는 청소 시작. 빨래도 우리 집은 대용량으로 1주일에 거의 한번 돌린다. 한 주간 음용할 해독주스를 만들고 나니 토마토가 남네? 살살 끓여 껍질을 벗기고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어 둔다.

그 외에도 가습기 청소며 화장실 청소 등 소박한 청소 거리는 만들수록 무궁해진다. 적당히 더러움과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중고품 정리였다. 어디선가 튀르키예에 겨울옷을 보내면 좋다 하여 옷장을 뒤져 가장 오래 묵은, 아니 가장 좋아했기에 가장 오래 살아남은 외투를 꺼냈다. 아내도 어젯밤 흔쾌히 한 벌을 내놓았다. 그 밖에 추가할 것이 없는지 옷장을 한참 보았다.


하지만, 이걸 받아드는 이는 입고 싶을까.... 하는 지점에서 망설여진다. 마침 찾아보니 중고물품 중 의류는 보건위생 측면에서 보낼 수 없다는 기사도 보인다. 하긴 코로나 벗어난 지 얼마나 되었나. 일단 팩트체크가 되고 나면 내일쯤 소식이 돌겠지.


생각이 짧았다. 시혜적인 자리에서 우쭐하여서. 나는 운이 좋아 그 재난을 피한 입장이면서 불쌍하다고 내가 안 입게 된 옷이나 주려 했다니. 옷이 무겁기도 하여 보내는 비용과 탄소 배출도 무시할 수 없겠다. 좋은 뜻으로 보낸 헌옷이 아프리카에서 쓰레기 산을 이루고 있다는 기사도 함께 검색이 되네. 일단 현금 기부나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헌데 손은 아직 아쉬운지 찬장을 자꾸 뒤진다. 결국 한 놈 걸렸다. 암 발병 이후 열심히 채소 씻어 껍질째 먹겠다면서 샀던 고가의 채소과일세척기. 그때그때 소량 씻어 먹게 되면서 대용량에 손이 잘 안 가더라. 오랜만에 당근 마켓을 열며 하루를 마친다. 덕분에 오늘의 발동한 정리병도 잘 정리되었다.


(202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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