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수술을 염려하여 나도 서울로 상경을 했다. 다행히 어머니 컨디션이 좋아 벌써 걸으신다. 상주보호자 아버지도 필요없으시단다. 덕분에 틈이 좀 났다. 허리가 뻐근하게 오후 내내 앉아 읽고 썼다. 간만에 몰입할 정도로 체력이 올라온 것 같아 흐뭇하다.
사실 요즘 다시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정리하고 소화시킬 틈도 없이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물론 박약한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나를 독서의 세계로 초대해 준 모임과 사람들 덕이다.
오늘은 암 환우 자조모임 아미다해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리더 강진경 작가의 안내로 지난번 <마음이 얹힌거야>를 선정하여 읽어주신 감사한 분들. 이젠 내가 모임에 독자로 얹혔다. 오늘 올린 <빨간머리 앤>도 이분들과 함께였다.
감사한 이들은 또 있다. [책이 힘이다]. 오로지 책을 읽고 나누기 위해 꾸준히 온라인에서 만나시는 분들. 벌써 두 번의 만남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설국>. 두 번이지만, 치열하게 토론이 오갔던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전주 금암 도서관에서 함께 했던 황규관 시인의 강의. 텍스트는 김수영 전집이었다. 우리는 슬프게도 우리 문학을 수능 과목으로 배운다. 나만의 시선과 가슴으로 작품을 읽어내려가는 경험 없이 객관적인 답을 골라야 했다. 얽매임 없이 자신 있게 김수영을 읽어내려가는 황규관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정답을 강요받았던 문학 읽기로 인한 갈증이 조금은 해소된 느낌이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어찌 이리 잘 아시는지. 빨간머리 앤을 읽고 나눈 기록을 블로그에 올린 직후, 책구름편집장님이 더 깊은 세계로 초대하신다. 자신은 없지만 덜컥 승선한다. 여긴 어디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디든 가닿겠지. 객관식 정답만 아니면 된다.
(2023.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