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일기 24> 마중

by 혁이아빠

어머니가 퇴원하셨다. 퇴원 수속에는 형님이 나섰다. 자식 도리 할 기회를 내가 독점하면 안 되지. 나는 서울역에서 만나 밥 한술같이 하고 보내드린다. 둘째 며느리와 손자도 배웅하러 나섰다. 주말에 병원에 가서 뵐까 하였으나, 아직 병문안에 엄격한 지라 여러모로 여의치가 않다. 결국 열차 타기 전이라도 잠시 뵙기로.

어머니는 무얼 또 오냐며 성화다. 혼자 다 할 수 있는데, 오기 번거로운데. 늘 그런 식이셨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명절마다 뵙는 것도 번거롭지요. 그러다 보면 가족끼리 얼굴 볼 일이 없지요.

함께 해야 하는 순간은 함께 해야 한다. 그 순간이 우리의 관계를, 나를 규정짓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놓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가족, 혹은 친구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관계에 터잡고 기대어 있던 나의 자리도 같이 희미해지고 만다.

예를 들어, 내게는 외할머니 돌아가신 기억이 흐릿하다. 어릴 때 돌아가셔서가 아니다. 일하는 어머니 대신 나를 많이 돌봐주신 할머니, 정작 떠나시는 길엔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장례식장에 잠깐 다녀오기만 했다.

떠나가시는 할머니를 충분히 배웅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은 두고두고 남아 나를 괴롭혔다. 죽음을 충분히 보고, 느끼고, 할머니와의 추억을 곱씹을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그 시간을 박탈당하고 나니 내 뿌리에 대한, 내가 연원한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인식도 희박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 없이 나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더 많이 애를 써야만 했다.

물론 어머니도 당시엔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하셨을 터다. 길어지는 요양생활에 병원비 부담은 늘어났고, 형제자매는 많았지만, 그 덕에 다툼도 잦았다. 장례식장에서도 이어지는 그 불편한 가족의 모습을 내가 지켜보게 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불편한 자리를 피하다 보니 즐겁고 축하받고 싶은 자리도, 위로받고 싶었던 시간도 종종 외로웠다.

잠깐이나마 아들 녀석을 등장시킨 것도 내 아쉬움 탓이다. 어머니께 손주 안아보고 가시라는 뜻도 있지만 교육적 목적이 크다. 요즘 유독 내 모든 말 뒤에 '왜?'를 붙이는 녀석이지만, 이건 이유가 없어. 가족이니까. 아니, 사실 너를 위해서야. 너 혼자 세상에 던져진 것 같아 두려울 때 기억하라고.

어머니는 포항의 요양병원으로 직행하신다. 남자가 아프면 아내가 고생하는데, 여자가 아프면 남편에게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 참 미안하고 죄송하다. 남자로서. 엄니도 피식 웃는다. 손주 보느라 열차 출발시간에 쫒겨 막판에 좀 뛰셨다. 수술한 몸으로. 내 욕심이 과했다. 에궁.


(20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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