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계속 머물고 있다. 덕분에 전주에 있는 동안 그리웠던 이들을 만나는 호사를 누린다.
곡절을 만나 무릎이 꺾이고 눈물을 삼키는 시간을 견뎌내며 만든 진한 나이테를 가슴에 새긴 사람과 만나는 게 좋다. 그 시간을 견뎌내며 품었던 속내, 그 맛을 아는 이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감추었던 표식을 꺼내어 서로 확인하는 시간. 잘 견뎌내주어 고맙다고 서로 위로한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좋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자신만의 슬픔에서 빠져나와 삶 앞에서 겸손하게 감사할 수 있었다. 전에 만났을 때보다 한결 더 가벼웠고, 더 많이 웃었다.
어지간해서는 더블헤더를 안 하지만, 오늘은 저녁 약속도 잡았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낸 직장 동료들과 뭉쳤다. 동료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나는 무서운 상사였기에.
평소엔 직장에서 MZ 세대가 어쩌고저쩌고 흉보던 꼰대였지만, 이렇게 불러줄 땐 두말없이 나가서 밥을 사야 한다. 함께 추억팔이에 흠뻑 담가졌다 일어나 보니 어려웠던 그 시간이 화사한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를 실행한 것 같다.
덕분에 늦었다. 밤 열시 반에 결재 올리라며 독촉하던 내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인데, 이제는 이 시간에 잘 준비를 마친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겠지. 그래도 피곤치만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