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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일기29> 바보예수가 나에게 물었다.

2023.2 24.

by 혁이아빠

강의를 하러 남원에 다녀왔다. 가장 어려운 시간 오후 1시. 졸음을 이기려 애쓰는 눈꺼풀 위에다 한참을 떠들었는데, 이야기가 얼마나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1타 강사 블로그 이웃님께 강의 기법을 좀 배워야겠다.


의외의 수확은 따로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연수원 사무실로 찾아가니 시원한 고로쇠 수액을 주신다. 먹을 줄 아냐고. 아이고 없어 못 마시지요. 벌써 고로쇠 수액 철이구나.


한 잔 들이켜다가 남원은 어디가 좋냐고, 광한루 밖에 가보질 못했다고 하니 따라나서란다.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으로 향했다. 남원이 자랑하는 핫플레이스란다.


이런 분이 계셨구나. 자기 작품만으로 하나의 미술관을, 그것도 시립미술관을 꾸릴 수 있다니 고인이거나 연세가 지긋하신 줄 알았는데 우리 어머니보다 젊으시군.


마침 '바보예수' 연작이 전시되어 있다. 맞서 싸우지 않고 희생되어 버린 바보같은 이. 뺨을 맞으면 반대 뺨을 내밀라던 바보같은 이. 작가는 80년대 후반에 시작했던 바보예수라는 화두를 들고 최근까지 끈기 있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 시절 비슷한 말들을 했던 이들은 다 떠나고 없는데.


어떻게든 그저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있는 내 앞을 바보같은 죽음이 가로막고 서서 묻는다. 그 삶으로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묻고 싶다. 무엇을 보았길래 죽음 앞에서 '다 이루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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