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이야기다. 서울에 있다 보면 끼니가 무섭게 다가온다. 한 끼 한 끼 어떻게 먹어야 잘 먹을까 고민을 해봐도 전주로 돌아와보면 살이 반드시 불어 있는 이 슬픈 현실. 아내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설수 없는 것인가. 비릿한 패배감이 고개를 든다.
전주로 돌아가는 아침. 냉장고에 부려놓은 식자재들을 모조리 먹고 가겠다는 다짐을 해보다가 그냥 먹을 수 있는 만큼만. 그 이상은 그만하자.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기는 것 싫어서 내 몸에 버리는 것이니까.
오랜 친구와 점심. 나처럼 쓸개 빠진 녀석이다. 간도 수시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슬픈 운명을 서로 위로하려고 만났다. 덩치 좋은 남자 둘이 어디서 볼까 얘기하다 소녀방앗간이란 상호를 찾아놓고 좋아했다. 소녀들이 좋아하는 곳인가 싶어.
막상 가보니 소녀는 간데없고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분위기. 한편 실망하면서도, 아, 제대로 찾았구나. 건강한 맛이겠구나.
간간한 명란 비빔밥을 먹으며 서로의 삶을 간봤다. 역시 회복탄력성이 무섭다. 아프기 전 수십 년을 살았던 관성으로 용수철처럼 돌아가고 있는 서로를 향해 웃으며 꾸중을 날렸다.
본론은 자녀 걱정. 아니 자녀교육은 실제 마나님들이 애쓰고 계시니 정확하게는 자녀 교육비 마련 걱정. 회사에 50대가 점점 없어져간다는 공포. 다른 삶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40대 중반 사내 둘이 인생 이모작에 대해 논하려니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따로 없다.
자조하듯 친구 녀석이 '일 안 해도 돈이 늘면 부자, 일 안 하고 자산으로 그저 현상유지면 중산층, 일해야 겨우 돈이 그대로면 평민, 일해도 돈이 줄줄 새면 빈민'이란다. 40대 부채 잔뜩 낀 자기 아파트에 서울 소재 대기업 다니는 부장님인 네 녀석은 그 기준으론 평민 아니면 빈민인데?
거봐라, 너 교육한다고 어머님께서 열심히 투자하셔서 나름 엘리트입네 하고 힘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영어유치원이며 목동 학원가에 뿌려질 그 돈 모아서 자산을 2개 사자고. 하나는 본인 살고 하나는 세주게.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그 '장래'의 교육비를 현재로 끌어와 로또 산 것처럼 이런저런 꿈을 그려보다 먹은 지도 얼마 안 된 속이 헛헛해져 일어섰다. 다음엔 밥 먹고 커피 마시지 말고 걷자꾸나 친구야. 걸으며 얘기하다 보면 수다도 꿈꾸다 말고 현실로 돌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