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아빠 Feb 27. 2023

내가 남길 수 있는 것도 결국 - <하루도 사랑하지 않

읽는 도중 몇 번이고 숨이 턱턱 막혔다. 암 한번 걸렸다고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간이 언제고 부끄러운 날이 올 것이라 믿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순간이다.

장혜진 작가의 삶에 비추면, 내가 겪은 시련은 그저 '원 오브 뎀'일뿐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 사랑과 관심이 더 궁핍했던 성장기, 이혼, 싱글맘, 잦은 이직, 두 번의 암. 그녀의 불행을 수식할 말은 차고 넘쳤다.

불행의 재료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냥 누구 사정이 더 딱한 지를 두고 경쟁하자는 것도 아니기에. 아니, 사실 그런 불행의 재료는 외면하고 싶을 만큼 도처에 널려 있기에. 다만, 변명과 탓과 투정 없이 삶의 진실을 가감 없이 마주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용기만큼은 정말 귀한 것이다. 그 내면에서 뒤엉겨 여전히 열을 뿜어내고 있는 감정들을 활자로 고정시키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맛본 이라면 알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과정에서 증오해도 시원찮을 인연들 마저 품었다. 헤어진 남편을 꺼내보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지워버린 기억 너머에서 미웠던 그가 작가를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을 살려내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잠깐 책을 덮었다. 글을 쓰며, 작가도 성장했겠구나. 반가웠고, 기뻤다.

이 책은 '나 이렇게까지 아팠지만 이겨냈고, 지금도 삶을 긍정하고 있어.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안 읽어도 대강 알 법한 그런 '긍정 강제 에세이'가 아니다. 글로 쓰면서 자신의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필부필부, 갑남을녀가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자신을 이해하고, 비로소 내가 되는지 보여주는 비법서이다.  

모든 에피소드를 옮겨 적고 싶지만, 한 장면만 소개한다. 작가에게 지독하게도 무심했던 엄마, 작가가 품고 아파한 평생의 결핍만을 선사한 작가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 작가의 외할머니의 임종을 맞이하는 장면. 아마도 더하면 더했을 할머니를 보내며 미움만큼 컸던 사랑과 용서를 토해내는 순간 그녀도 엄마를 용서한다.

몇 차 함수로 옮겨 적을 수 없는 인생의 공식이란 게 있나 보다. 나도 꼭 그렇게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을 털고 일어났기에. 아마 이 책을 읽고 있을 다른 독자들도 책장 사이마다 느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새로운 친구를 만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참, 글을 쓰며 내 삶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도.


#장혜진작가 #하루도사랑하지않은날이없었다 #책구름출판사

매거진의 이전글  도처에 가득한 불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