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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일기34> 계획말고 대응, 대응 안 되면 적응

2023.3.1. 진안 마이산 탑사 앞에서

by 혁이아빠

머리가 아프다. 어제는 수면제도 먹지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났다 다시 잠들고, 라디오를 틀었다가 라디오 꿈을 꾸며 다시 잠들었다. 휴일이니 억지로 나를 깨우지 않아도 좋다며 꿈과 현실을 부단히 오갔다. 머리가 안 아플 때까지 누워서 버텼다.

흐리다. 비도 새벽에 살짝 왔는데 미세먼지도 많은 이런 모순된 날. 하늘이 가까이 내려앉은 이런 날은 어김없이 커피를 마셔줘야 했다. 그래도 디카프로 타협한다. 함께 마이산으로 향하기로 한 사내와 만나기 전 편의점에서마저 나와 싸운다. 커피를 끊기로 했지 않는가!


캔커피 코너 앞에서 1+1에 무너진다. 가는 길, 동행자에게 웰컴 드링크로 줘야지 하며. 계산대 앞에 서니 2+1이란다. 저기 쓰여있는 것은 뭐냐니 2월까지 행사가 그랬고, 오늘은 3월 1일이란다. 아놔, 3캔 샀다. 나타난 동행자는 숙취로 커피를 못 마시겠단다. 사놨는데 먹지를 못하니....


그래도 커피 한잔 마시니 날씨는 개이지 않아도 머리는 개인다. 마이산 탑사로 향하기 전 식당에서 시킨 정식에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위축의 징후를 본다. 고기 양이 너무 창렬하다. 나보다 체격이 큰 사내와 같이 먹는데, 내가 더 많이 먹는다. 요즘 식욕이 통제가 안 되어 큰일이다.

어느 처사가 음과 양의 조화를 맞추어 정성껏 쌓아 올렸다는 탑사. 차라리 처사님에 대한 설명을 좀 더 간략하게 신비주의 전략으로 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98세를 사신 처사께서 솔잎 생식만 드시다 마지막 1년은 숫제 단식하셨다는 설명이 오히려 탑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듯해서 아쉬웠다. 뭔가 빌라는데, 나와 가족과 이웃님들의 건강 외에는 빌 것이 없었다.


귀양살이를 오래 하고 있는 처지인지라, 직장동료 사내와의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누구는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고, 어느 보직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등.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운칠기삼 같은 스토리들을 나누고 내린 교훈은 하나. 직장 생활이란 게 계획과 바램은 아무 의미 없고 그저 대응과 적응뿐이라고. 모든 걱정 미리 할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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