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프다. 어제는 수면제도 먹지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났다 다시 잠들고, 라디오를 틀었다가 라디오 꿈을 꾸며 다시 잠들었다. 휴일이니 억지로 나를 깨우지 않아도 좋다며 꿈과 현실을 부단히 오갔다. 머리가 안 아플 때까지 누워서 버텼다.
흐리다. 비도 새벽에 살짝 왔는데 미세먼지도 많은 이런 모순된 날. 하늘이 가까이 내려앉은 이런 날은 어김없이 커피를 마셔줘야 했다. 그래도 디카프로 타협한다. 함께 마이산으로 향하기로 한 사내와 만나기 전 편의점에서마저 나와 싸운다. 커피를 끊기로 했지 않는가!
캔커피 코너 앞에서 1+1에 무너진다. 가는 길, 동행자에게 웰컴 드링크로 줘야지 하며. 계산대 앞에 서니 2+1이란다. 저기 쓰여있는 것은 뭐냐니 2월까지 행사가 그랬고, 오늘은 3월 1일이란다. 아놔, 3캔 샀다. 나타난 동행자는 숙취로 커피를 못 마시겠단다. 사놨는데 먹지를 못하니....
그래도 커피 한잔 마시니 날씨는 개이지 않아도 머리는 개인다. 마이산 탑사로 향하기 전 식당에서 시킨 정식에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위축의 징후를 본다. 고기 양이 너무 창렬하다. 나보다 체격이 큰 사내와 같이 먹는데, 내가 더 많이 먹는다. 요즘 식욕이 통제가 안 되어 큰일이다.
어느 처사가 음과 양의 조화를 맞추어 정성껏 쌓아 올렸다는 탑사. 차라리 처사님에 대한 설명을 좀 더 간략하게 신비주의 전략으로 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98세를 사신 처사께서 솔잎 생식만 드시다 마지막 1년은 숫제 단식하셨다는 설명이 오히려 탑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듯해서 아쉬웠다. 뭔가 빌라는데, 나와 가족과 이웃님들의 건강 외에는 빌 것이 없었다.
귀양살이를 오래 하고 있는 처지인지라, 직장동료 사내와의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누구는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고, 어느 보직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등.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운칠기삼 같은 스토리들을 나누고 내린 교훈은 하나. 직장 생활이란 게 계획과 바램은 아무 의미 없고 그저 대응과 적응뿐이라고. 모든 걱정 미리 할 필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