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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일기 39> 스미마셍

2023.3.6.

by 혁이아빠

https://naver.me/Fjj55KKM


어릴 적, 같은 반 친구가 나를 때렸다. 친구는 나에게 용서를 빌지 않았지만,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그 친구의 부모가 나의 부모에게 돈을 줬다. 나의 부모는 그 돈을 받아 이런저런 빚도 갚고, 작은 가게 하나 차리는데 썼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지만, 나는 그 일이 두고두고 분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라도 안 보고 살 수 있다면 잊으련만, 여전히 같은 동네에서 장사하고 있다.

응어리가 화병이 될 것 같아 다시 용기 내어 나섰다. 너희 부모 말고, 니가 직접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다시 말했다. 여전히 그 친구는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았다. 억울해서 재판도 했다. 재판부는 친구 보고 나에게 배상하라고 했다.

친구 부모는 이미 돈 받았지 않냐고, 그거 먹고 떨어지라고 섭섭치 않게 주지 않았냐고, 한참 지나 다시 그때 일을 들추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되레 화를 낸다.

친구네 가족의 반응이야 예상했지만, 어이없게도 되려 내 부모가 성화다. 돈 필요한 거면 그동안 가게에서 번 돈으로 용돈을 좀 주겠단다.

아니, 이 문제는 저 친구 놈과 나의 문제라고요. 성인이 된 나의 의사결정을 부모님이 대신해 주실 권리도 없어요. 그리고, 나한테 돈 준다면, 그 돈 친구 녀석에게 다시 받아오실 겁니까? 아니라구요? 그냥 그때 받은 돈으로 가게 하고 있으니 그 돈이 친구 돈이나 진배없다고요?

부모님, 저에게 돈 주셔봤자 제가 친구에게 배상받을 권리가 없어지는 거 아닙니다. 안 받을게요. 사실 저 돈 때문에 이러는 것 아닙니다. 넣어두세요.

그리고요, 그때도 그러셨잖아요. 그 친구 놈 부모에게. 사과한다는 말이라도 해달라고. 시늉이라도 해달라고. 근데 합디까?

아, 장사는 계속하셔야 하니까. 그 집이 아직 큰 도매상 하죠. 물건도 계속 떼어와야하고. 근데 거래선이야 이미 바꿨잖아요.

아, 조합에서 조합장이 사이좋게 지내라 그런다고요? 뭐 사이좋게 안 지내면 조합에서 탈퇴시킨답니까? 조합회의야 꼬박꼬박 나가고 있고, 하라는 거 다 하고 있잖아요.

왜 억울해 미치겠는 자식은 못 보세요? 미안하다 소리도 못 들으면서 뭐가 그렇게 스미마셍하세요 항상? 이제 제발 참견 좀 하지 마세요.

송혜교가 나오는 사적 복수 드라마가 왜 인기 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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