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일기49] 핫팩이 터져야만 봄이 오는가

2023.3.16.

by 혁이아빠

주머니에서 핫팩이 터졌다. 아침 기온이 영하도 아니고 고작 영상 3도였는데, 그걸 못 참고 핫팩을 하나 열어 주머니에 넣었더랬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고, 겨우 내 3번쯤 겪은 것 같다.


행여 몸에 찬 기운 스밀라, 잔뜩 쫄아 있었나 보다. 몸이 차면 암이 자라기 쉽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무의식적으로 추운 상황을 피한다. 난방도 세게 틀고, 핫팩도 항시 소지했다. 겹겹이 껴입는 것이야 기본이었고.


사실 몸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을 터이고, 춥더라도 심부에서 체온을 유지하도록 하는 항상성 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다. 오히려 혈관이 수축되고 긴장하는 교감신경 우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 하겠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이해도 했건만, 왜 그리 추위에 기가 눌려있었던 것일까.


3월이 절반 너머 지났는데도 마음이 아직 겨울이었나 보다. 봄이 왔어도 언제 다시 북극 한기가 내려올지 모르니 어떻게든 웅크리고, 추위에 열을 뺏기지 않으려 씨름했다. 기후변화로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도 새싹들은 용감하게 움트건만, 들풀만도 못했는가.


필라테스를 마치고 나오면서 외투를 걸치고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핫팩을 쥐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위해 꺼낸 손이 시커멓다. 터진 핫팩을 꺼내며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운동하던 처자들이 반팔 차림으로 측은하다는 표정을 건네며 지나간다. 아 *팔려가 나와야 정상이지만, 추위를 타게 된 만큼 부끄럼은 안 타게 된 지라.


추위가 아니라 어디 남아 몸을 돌고 있을지 모르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암세포들이 두려웠던 것이겠지. 너무 움츠러들지 말자! 핫팩아 고맙다. 덕분에 두꺼운 겨울 외투 빨고 옷장에 집어넣게 되었구나. 당당하게 봄을 맞자!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여전히 사우나로 향한다. 추워서.

신안 압해도 갈색 들판에서 봄을 불렀다. 컨셉잡는 모습을 아내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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