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일기 56] 비오는 날 뜬금없이 김광석

2023.3.23.

by 혁이아빠

몸일기의 제작 과정은 이렇다.


1. 하루 일과(대개는 운동)을 마치고 혁이가 잘 시간쯤 휴대폰을 켠다.


2. 사진 중에 글감을 고른다. 사진을 보며 글을 구성해 본다. 여기서 써지면 다행.


3. 먹은 사진뿐이면 먹은 기억을 중심으로 좌우로 기억들을 반추해 본다. 글감이 떠오르면 그에 맞는 사진을 대강 찾는다. 사진 찾기도 5분을 넘기면 안 된다.


4. 그마저도 안 찾아지면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아무 말 대잔치라도 흩어놓고 거기서 뭐라도 반짝이는 것들을 주워본다.


여기까지는 사실 인스타 게시물 제작 과정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오늘 나는 이렇게 화려한 곳을 방문했으며, 그 속에서도 이토록 유난히 빛나는 존재였으며, 하기에 대단히 특별했다고.


하지만 실제 내 개똥철학은 매일 루틴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는 것 아닌가. 설사 그것이 심심하고 차마 내놓고 발설하기 비겁하고 구차한 것들로 가득 차 있더라도. 그것이 매일 바위를 이편에서 저편으로, 저편에서 이편으로 옮기는 바보같은 일일지라도. 묵묵하게.


사람이 앞과 뒤가 같고 일관되려면 일기도 어제 같은 오늘, 오늘처럼 반복될 내일을 당당하게 써야 할 것인데. 이것이 인간의 진실한 얼굴이라고. 어제처럼 오늘도 먹고 싸고,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납기에 맞춰 내가 할 일들을 하고 왔다고.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고 필라테스에 가서 엉덩이 바깥쪽에 자극을 잔뜩 먹이다가 복근으로 넘어가 머리가 띵해지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힘을 주다가 제풀에 지쳐 사우나를 하고 돌아와 지금 이렇게 앉아 있다고.


그래도 일기만큼은 그중 한 장면만 클로즈업해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글 쓰는 훈련도 되고. 나아가 블로그라는 공개적인 공간을 찾아주시는 이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도.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다가올 내일과도 다르기 위해서도. 밤마다 뭐라도 반짝이는 것을 찾는 수고를 마다않는 변이다.


반짝이는 것이 안 보이는 것은 순전히 몸 상태 탓이다. 어제 가슴 벅찬 상태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수면제를 간만에 먹었더니 종일 멍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심지어 성악연습도 못 가고 탈진해 집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 지금 방금 문득 생각난다. 오늘 별일이란 게 있었구나.


직장 지하에 동호회 모임 장소가 있는데, 점심을 함께 한 옆방 아재께서 기타 동호회 활동을 하신다. 거길 우연히 같이 둘러보다가 그만, 김광석의 노래를 발견한 것.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김광석 LP를 들으며 병맥주를 마시던 기억이 밀려와서 그만 간만에 기타 들고 한 곡 뽑고 말았다. 살아계시다면 내년이 환갑. 세월의 무상함에 취해 열창하고 나니, 정작 그보다 한 살 어린 65년생 옆방 아재는 자긴 김광석 잘 모른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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