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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3 그림대회

드러냄의 본질에 관하여

by Th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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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저는 저의 한계에
도전해 보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림대회에 나갔습니다.


'내가 반에서 제일 잘 그리는 아이일까?'

'내가 교육청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전국에서 나의 수준은 어떨까?'


아동서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공모전부터 라우드 소싱까지


지금 시대에는 그림으로 대결하는
수많은 대회가 존재합니다.


그중 일부는 짭짤한 상금을 걸어놓기도 합니다.

영국에 있을 때,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시절

키스해링 재단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좋은 기회로 상을 탈 수 있었고

재단에서 제게 준 상금은

한국에 돌아올 비행기 표값으로

아주 요긴히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기업과 정부가 주는 상은

그 규모가 꽤나 큽니다.

어떤 대회는 아주 화려한 시상식을 가지기도 합니다.


칭찬과 영광 그것이 계속되다 보면

우리는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걸까요?


가상의 한 아이를 만들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 아이가 그림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아이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날은 온 가족의 잔칫날이 되어

아이에게 잊지 못할 날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기뻤던 아이는
더욱더 많은 감탄과 칭찬을 끌어모으기 위해
그림대회에 참가하고 또 참가합니다.


이기고 , 또 이기고

기뻐하고 또 기뻐하고


그러나 그 끝은 무엇일까요?

남에게 칭찬을 듣기 위한 그림은

남을 위해서 그리는 그림은,

과연 창작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그림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이기고 미대에 와서

그림을 그린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을
아주 여럿 봤습니다.

남을 이기고 몇 명 안에 드는 그 게임을 하는 것까지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스포츠처럼 재미있었는데,


막상 학교에 와서
자신의 생각이 담긴 작품을 하려니

할 말이 없었던 거죠.


대회의 본질은 뭘까요?

저의 그림 선생님들은
그림을 그리는 도중 하프타임정도가 되면

주변 학생들의 그림을 둘러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더욱 수련하며
다른 이들의 스타일을 배우기도 하고,
또 그 시간 오롯이 진지하게
그림을 그려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마 어린아이 때부터 이기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아이는 대회에서 상을 탔을 때,
사람들의 칭찬에서 느껴지는
그 달콤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쫓을 겁니다.


어린아이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의 가치나
방향성에 대해 혹은 경쟁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경쟁 외의 다른 가치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 간혹 주변에 없기도 합니다.


그럼 아무런 경쟁도 하지 않기 위해

집에서 혼자서만 보는 그림을
쌓아두는 건 어떨까요?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이 있다고 해봅시다.

집에서만 그리는 그림입니다.
게다가 누군가라도 방문한다면
그 그림이 창피해
그림 위에 천을 씌운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그림은 본인에게는 가치가 있을지언정,
다른 이들의 자유로운 평가를 감당할 수 없는
나약한 작품이 되고 맙니다.
그리는 사람이 즐겁기만 하면 됐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어쩔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봅시다.
그림은 자신의 아주 많은 부분을 반영합니다.
목소리, 존재, 주변환경, 유연함과 관용,
호흡과 여유, 몸과 생각.
그 모든 것을 드러냄에 있어서 당신은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행동하나요?


자신의 목소리가 충분히 여성스럽거나
남성답지 못해 숨기지는 않나요?

집안 환경을 보여주지 않으려
친구를 초대하기 꺼리지는 않나요?

긴장을 자주 해 발표하는 자리를 피하지는 않나요?


자신의 그림을 보여준다는 것은,
백 프로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세상과 관계하며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의 문제를 넘어
진정한 자기 스스로가 되어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발표하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변주됩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돌보고
그 돌본결과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며
화가 난 것에 화를 내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고,

감춰둔 강인한 사랑을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그런 것이니까요.


당신도 당신의 말하는 그림도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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