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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누구의 그림일까?

그림, 꼭 끝까지 그려야 할까

by Th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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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천천히 생각해 볼 주제가 있습니다.

그림은 작가의 의지로 끝까지 그려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작가가 계속 그려내다 보면
어느 순간 어쩌다 보니 끝나있는 것일까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스스로 약속하고는
그림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그림은 끝까지 그려지기도 했지만

어떤 그림은 어쩐지

끝이라고 말하기에 애매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림의 중간과정을 공유하면

어떤 사람들은 "너, 그 그림 다 그렸던데?"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그림의 끝을 정해주는 것일까요?

보는 사람이 끝을 결정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온전히 그리는 사람의 뜻에
달려있는 것일까요??


그림은 누구의 것이고,

그림이 어떠하다는 건

누가 정해주는 걸까요?


'완성'에 대한 주제는 잠시 덮어두고
'창작자와 감상자'라는
더 깊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단순히 '이미지 생성'의 관점에서 그림을 본다면
하나의 작품은
결국, 클립아트처럼 사람들에게 소비됩니다.


특히나 요즘에는 넘쳐나는 이미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 하나하나의

의미와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출판을 통해 지면에서 바라보는 이미지들은
그나마 낫습니다.

sns에서 1초도 안 돼 지나쳐지는 이미지들은

아무런 빛도 발하지 못한 채로 묻히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어떤 그림은 소비자에게뿐만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버려진 것 같습니다.


캡션에는 '망작', '급하게 그린 그림'
혹은 '아직 초보라.. '같은 말들이
쓰여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정말 어떤 감상자들은 아직
감상의 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터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네요.

피터는 저의 오랜 친구로, 햇수로 치면
그와 연락하고 지낸 지는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제가 어려웠던 시절
저에게 커미션을 요청한 고마운 친구입니다.


어느 날 그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자신의 고양이를 그려줄 것을 요청했고
완성된 그림을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그 그림을 자랑하고 또 자랑했습니다.

아직까지도 피터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그 그림을 자주 감상하며
메시지에서 그 그림에 대한 감사를 표하곤 하는데,


그림을 선물하고, 소장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피터가 그렇게까지 자주
그 그림을 감상할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제 그림 외에
다른 그림을 소장해 본 적이 거의 없고
그림을 그렇게 까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그때는 돈이 궁해 그렸지만,
그 당시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은 목탄은
제게 새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다시 그림을 그린 다는 건 그런 일입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하는 일,
다시 살아보자 다짐하는 일.
한 스타일을 고수하며 치열하게 싸워온
작가처럼은 못되더라도,
아주 잠시라도 삶의 충분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일.


각설하고,

그림의 주인은 창작자와 감상자 중에

그림에 더욱 애정이 있는 쪽일까나요?


그 고양이 그림의 주인은 저일까요?

아니면 피터일까요?


더 깊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 보려고 합니다.

할튼 저는 다 그리지 않은 제 그림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버렸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저의 어떤 과정을 노출한 것이죠.
제가 원해서 공유한 것이니,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 그릴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런 미완성의 그림들이 계속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미완성의 제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미완성의 저도 완성으로 봐주는 많은 따뜻한 사람들이 있고
좋은 감상자들이 있으니 힘을 내서
좋은 창작자가 되보기로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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