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와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내 몸 하나는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지만, 마음은 내키지 않았다. 늘 그랬듯 중간만 하고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책을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이 향하는 길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취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이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반쯤 포기된 육체를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선택을 부모님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 길은 역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깃들어 있던 질문 ― 책은 거짓말을 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가려낼 수 있는가 ― 과 맞닿아 있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었다. 서술자 역시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통찰이 뛰어나도 작은 자아의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해 걸어간 이들이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있었다. 그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우리는 공통된 경험을 발견하고, 거짓을 쳐낼 힘을 얻는다. 그러나 마지막 경계는 언제나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것. 단호한 태도 위에서만 진실에 닿을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이들이 자기 기준으로 지켜온 기록들을 어느 정도 신뢰하며 거리낌 없이 읽었다. 흥미로웠으니 성적은 자연스레 뒤따랐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려 하니 학자로서의 태도가 요구되었다. 내면의 질문을 좇는 일과 직업적 조건은 본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학자가 되려는 뚜렷한 생각을 품은 적이 없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열정은 애초부터 내게 없었다. 다만 필요한 만큼 벌어, 질문을 이어가기 위한 경험에 쓰고 싶었을 뿐이다. 오롯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이상, 질문 앞에서는 성실해야 한다는 결심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렇게 나는 이중 전공을 선택했고, 결국 철학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형태만 달라져 왔을 뿐이라는 것을. 내 질문은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가까웠으므로, 흥미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는 타인에게는 적당히 둘러대지만 스스로에게는 철저히 솔직하다. 내 안에서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보이는 세계의 많은 것들을 기꺼이 포기해왔다. 철학 공부 역시 그 태도의 연장선이었다.
나는 진리를 향한 수많은 시도들을 편견 없이 탐독했다. 고전과 그 해석들을 목적 없이 읽고 즐겼다. 개념들은 스쳐 지나가듯 어렴풋이 비추고는 사라졌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확히 가려낼 기준이 없었기에 흐름에 맡겨두었다. 그 덕분에 뜻밖에도 인도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신체를 다스리는 요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의도치 않게 영적인 문 하나가 열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플라톤을 연구하신 분이었기에 나는 그의 저작들을 자주 접했다. 학부 과정은 입문에 머물렀지만, 그 속에서 이데아의 개념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어렴풋이 경험적으로 닿아오는 무언가였다. 나는 플라톤의 사상을 온전히 설명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완전한 이론의 정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그럼에도 수많은 시도가 본질을 향한 몸부림이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도 철학은 다시 내 앞에 다가왔다.
진짜는 조용히 온다고 했던가. 내가 얻은 경험은 말해준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것이라도, 과한 충격은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결국 눈가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무렵 공부한 인도 철학도, 플라톤도 그랬다. “그런 것이 있구나”, “이런 내용이구나” 정도의 인상에 지나지 않았다. 닮은 점이 있다면 허무한 세계 속에서 허무하지 않음을 설파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증명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요가는 이어졌고, 명상은 자연스레 가능해졌다. 인도 철학도 틈나는 대로 읽고 사유하며 내 질문과 맞닿아 갔다. 삶의 여정 속에서 크고 작은 끌림들이 눈앞에 나타났지만, 더 멀리 나아가려는 욕망은 없었다. 나는 끌림을 곧 방향으로 삼아, 열린 길로 받아들이며 조용히 걸음을 이어갔다.
물리적 방향은 거미줄처럼 흩어졌지만, 결정의 순간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제동 ― “그러면 안 된다” ― 를 따랐다.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욕망에 모든 것을 바칠 기운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문제는 아니었다.
즐거웠던 시절이었기에 예술 관련 학예사의 길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본질적 의미는 없었다. 다만 그 직업이 주는 환경이 괜찮아 보였을 뿐이다. 직업은 내게 자아를 비대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까운 자리에서 최신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흘렀다. 성적은 자연스레 뒤따랐고, 나는 다시 직업을 위한 공부로 돌아갔다. 담담하게, 그저 그렇게. 흥미로운 것은,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였던 역사와 철학이 결국 지금의 직업을 얻는 데 예상치 못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탐구를 좋아한다. 빼어난 지적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묵묵히 시간을 들여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탐구를 사랑한다는 증거다. 직업을 위한 학교에서도, 전혀 다른 분야를 배우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와 이유를 찾았다. 큰 그림을 그려 예측하고, 그것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공부의 고유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생활 속에서도 나의 질문만큼은 결코 놓지 않았다. 운 좋게 그 질문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런 행운이 언제나 내 곁에만 머물지 않음을 알았다. 할 일은 했으나, 내게 더 중요한 것이 있었고,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면 언제나 외부적인 요소가 제일 먼저였다.
그래서 결과는 늘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필요한 만큼만. 때로는 빼앗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그때는 빼앗긴 줄조차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았을 뿐이다. 대신 나는 바깥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원한다면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행동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과함을 경계했다. 덕분에 무모함 속에서도 위험에 처한 적은 없었다.
나는 모든 시간 앞에서 진심으로 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와중에도 내면의 질문만큼은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면, 아마 이런 뜻일 것이다. 세상을 위한 것도, 작은 자아를 위한 것도 아닌, 드러나지 않은 그것을 최우선에 두며 진심을 다하는 것. 그럼에도 육체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완전히 써내고 태워내는 것.
외적으로 이룬 것은 없었지만,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열정적인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