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고요의 얼굴로 걷는 모험

역할들

by BEAU WOI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다. 그러므로 이 작은 몸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불완전하다. 어떤 이들은 재능을 타고난 삶을 산다. 그러나 그 재능은 본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맡은 역할을 위해 주어진 도구일 뿐이다. 삶을 조금 더 편리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본질을 향하려면 오히려 멀리 돌아가야 한다. 분리의 선물은 달콤하게 포장되어 있으나, 그 속에는 우리를 더 단단히 묶어 두는 사슬이 숨어 있다.


분리는 끊임없이 작은 자아에게 역할을 던져준다. 거부하기 어렵게 하고, 환경을 교묘히 조작해 결국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다. 그러나 간혹 이 장막을 넘어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알지만, 정확히 무엇을 아는지는 모른다. 다만 찾고, 다시 찾는다. 찾은 줄 알았다가 또다시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된다. 여기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때로는 죽음을 가까이 경험하며 자각에 닿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생을 다 쓰고 난 뒤에야 깨닫고, 다음 생에서 다시 역할에 휩쓸려 기억을 잃는다. 분리의 톱니바퀴는 그렇게 유지된다.

만약 한 육체 안에서 이원성의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강력한 의지를 발휘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더 큰 분리의 균형이 흔들린다. 본래의 힘이 아니라 본질에 근접한 다른 힘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된 길이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일단 발을 들이면 돌이킬 수 없는 무게가 따른다. 마치 사채를 쓰듯, 삶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도 그 힘의 책임은 반드시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내면의 길은 정면 돌파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켜보는 길,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는 길이다.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길, 카운터 펀치의 원리다. 조금씩 공부하고, 경험하며, 기억을 되살려 가는 방식이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내면은 텅 비고, 화려한 껍질만 남아 부품처럼 기능하게 된다. 이 세계가 주는 보상은 본래 그런 것이다. 그 선택 앞에서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갈 문은 닫힌다.


그래서 영적 전통은 경고한다. 악마의 속삭임은 늘 달콤하다.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이 세계에서의 성취,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속의 역할일 뿐이다. 그 길은 허무 속의 제왕으로 살게 할지 몰라도, 인간의 본질은 결코 충만하지 않다. 이곳에서 얻는 모든 것은 변주이자 분열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 앞에 선다. 허무 속에서 모든 것을 거두며 살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을 넘어 더 깊은 모험을 떠날 것인가. 후자는 미친 짓처럼 보인다. 이 세계가 죄책감과 두려움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을 실제로 살아낸 삶들이 있다. 대놓고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찾고자 한다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다.


물리적 차원에서는 ‘가졌다가 내려놓는 연습’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졌다가 돌려주는 것과 애초에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 무게와 대가가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직 방향이다. 곧장 가든 돌아가든, 결국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이번 생의 역량을 결정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잊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유혹은 반복되지만, 선택의 무게는 언제나 남는다.


결국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빛의 조각들을 놓치지 않는 삶. 겉으로는 묵묵히 살아가는 듯 보이나, 실은 가장 깊고 치열한 모험을 떠나는 삶. 그것이야말로 분리가 트집잡을 수 없는 방식이며, 내면을 향한 가장 안정적이고도 모험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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