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피할 수 없는 그림자

두려움

by BEAU WOI

분리 그 자체를 역이용해 내면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분리와 무관한 내면의 작은 성취가 드러나고, 빛의 흔적에 닿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때부터 위험은 시작된다. 분리는 이원성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질서 밖의 무언가가 스며들면 반드시 반작용을 일으킨다. 내적 수행자는 마치 그 소식이 분리에게 보고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체험한다.


곧이어 몰려든다. 이미 나르시시스트로 살아온 이들이 다가오거나, 그렇지 않던 이들조차 무의식 깊은 곳에서 나르시시스트적 충동을 끌어올린다. 약한 자아가 흔들릴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생존 본능 ― 자신을 방어하거나, 더 나은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빼앗으려는 충동이다. 그러나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느냐, 아니면 스스로 다스리느냐는 성숙과 훈련의 문제다.


이 과정에서 수행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를 “원래 그런 사람”이라 단정하지 않는 일이다. 모든 작용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 반응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바로 여기서 용서가 제자리를 찾는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일어난 적조차 없음을 아는 것. 분리 안의 사건들은 결국 허상이라는 인식이다. 수행자가 놓아서는 안 되는 핵심 태도다.


나르시시스트적 충동은 인간을 도구화하며, 분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모방한다. 수행자가 분리를 역이용하니, 분리의 반동은 수행자를 도구화하려 든다. 영적 길을 오래 걸어온 이는 분리 속에서 특별히 두드러져 보이기에, 소유욕이 강하게 자극된다. 수행자는 그것이 작은 자아가 불러들인 악의 파생임을 알지만, 설명으로 닿지 않는다. 이 괴리 속에서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답답함이 몰려오지만, 내면의 길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꾸준히 나아갈 때 상대의 매듭조차 풀려나게 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 개체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이다. 행복은 숨겨도 알아채듯, 내면의 빛 역시 말하지 않아도 감지된다. 수행자의 빛은 교류 전후로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통합이 분리를 넘어 있다는 증거이며, “인간은 하나다”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상호작용은 수행자를 더욱 단련한다. 용서는 단순히 덮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직시하는 훈련이다. 나르시시스트적 행위조차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을 때, 빛은 더욱 강해진다. 수행자는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독보적인 존재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영광은 부수적일 뿐이다. 그것에 취한다면 다시 분리에 매이게 된다. 수행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언제나 본질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피하지 않는 태도다. 두려움에 도망치지 않고, 모든 방해와 충동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마주한다는 것은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다. 그리고 그것을 두려움이 아니라 용서로 다루는 것이다. 그럴 때 수행자는 분리조차 역이용하며, 내면의 빛을 더욱 깊이 드러내는 길 위에 선다.


빛은 본질이고, 그 밖의 모든 영광은 그림자다. 그림자를 붙잡으면 빛을 잊는다. 빛의 부수성은 누릴 수 있으나, 그 달콤함에 취하지 않는 것. 이것이 수행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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