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사랑은 여전히 있다

사랑

by BEAU WOI

내가 아는 사랑은 세상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생존의 합리화를 낭만으로 포장한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진짜일까?”라는 질문이 앞섰다. 그래서 감정은 내게 아름다운 경이적 순간이 아니고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신호에 불과했다. 부정적 감정을 차단하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사랑조차 정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내가 균열을 만났다. 특별할 것 없는 순간에서였다. 작은 자아는 자신이 강한 박티(Bhakti)임을 알지 못했다. 다만 안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 때문에 늘 상처받던 존재였다. 자연스레 열려 있었으나 닫을 수 없는 문. 이미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 틈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박티 안에서 흘러넘치는 그것 ― 사랑에서 비롯된 감정 ― 은 사실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것이 자기 것이라 믿는다. 감정의 과잉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본질을 닮은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예술가들이 과민한 감정을 지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박티적 기질을 타고났지만, 생존을 위해 그 문을 닫는다. 끝까지 열어두는 이는 드물다.


나는 알게 되었다. 작은 자아로 사랑하려 할 때, 그 감정은 내게로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용서하여 빛을 드러내자, 그 사랑은 퍼붓듯 흘러들어왔다. 경험되는 것은 충만, 스며드는 것은 평온한 채움이다. 자아의 의도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은 자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직 용서가 열어준 틈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박티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에서 온 감정이 몸을 가득 채우면, 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판단도 옅어진다. 그래서 박티들은 매 순간만을 사는 듯 행동한다. 내일은 오지 않았고, 과거는 기억일 뿐. 지금이 전부이기에 그 순간 안에서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러나 즈냐나의 눈에는 그것이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 촉발한 거대한 감정이 몸을 휩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어떻게 다루느냐 ― 그것이 박티의 숙제다.


사람은 대부분 박티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 감정이 자기 육체로 굴절되는 순간, 그것은 곧 나르시시즘으로 변한다. 방향을 잃은 힘은 분리와 허무로 흘러가고, 작은 자아는 거대한 두려움에 무너진다. 그래서 많은 박티들이 세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남기 위해 그 문을 닫는다. 이해 가능한,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드물게는 넘어지고 실수하더라도 내면의 다름을 짊어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을 구현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박티는 즈냐나의 빛을 통해 자신 안의 순수를 다시 닦고, 즈냐나는 박티의 감정을 통해 본질을 다시 마주한다. 잊혀질 만한 순간에도 다시 기억하게 된다. 길은 달라도, 결국 하나로 모인다. 인간이 내면 깊숙이 하나이듯.


균열을 통해서만 잠시 스쳐가지만, 사랑은 분명 있었다. 사랑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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