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밤끝으로의 탐험

셀린(Louis-Ferdinand Céline)과 릴케(Rilke)에서

by BEAU WOI

삶과 일상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극단으로 가지 않으면 큰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 제때 빠져나오거나, 제때 들어가면 됐다. 내 기분에 해석을 맡기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보는 것, 그러나 내 욕망에 근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과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대체로 평온했고, 나름의 질서도 있었다. 계속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익숙한 사람들과 반복되는 하루가 있었으며, 그 안에서 작은 만족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생겼다.


정말 이게 다인가.


그렇다고 안 해본 모든 일을 해보기에는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과정과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구조적으로 비슷한 것은 본질적으로 같으니. 굳이 내가 다시 확인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미 알려진 구조를 반복하는 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무언가 결핍되어 있어서라기보다,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하루들 속에서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틈이 생겼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어딘가 남아 있는 여백, 아직 닿지 않은 층이 있다는 감각. 그래서 본능적으로 삶에서 한 걸음 떨어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아니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의 개념이 내가 이미 알고 있던 행복과 조금 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핍으로도 해석해본다면, 일상과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는가. 지금 생각하면 꼭 일상의 삶을 거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익숙한 리듬 안에 오래 머물면,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의 믿음이 자연스럽게 바래진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이 그저 믿는 사실일 뿐이란 건 늘 드러나는 일이니. 그래도 삶이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과,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질문을 탐험하는 건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멈추지 않았기에, 불완전하지만 균형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향했다. 아직 감각의 재미를 놓고 싶지 않으니. 시선이 먼저 움직이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새로운 장소, 다른 공기, 익숙하지 않은 시간의 흐름. 넓어지는 방향의 탐험이었다. 낯선 도시의 거리와 다른 언어의 리듬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감각적으로 올 것 같았다. 꽤 요란스럽게도 일반적이지 않은 여행을 다녔고 다채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다. 밖으로의 여행에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장소는 달라져도 자신은 그대로 따라온다. 풍경은 바뀌지만 내부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멀리 갈수록 선명하게 드러난다. 구조적으로는 별 게 없음을.


그때 떠오른 문장이 있다. Journey to the End of the Night 에서 Louis-Ferdinand Céline이 쓴 문장이다; 여행 그것은 매우 유익하니 상상에 끊임없는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여타의 소득이란 실망과 피곤뿐이다. 우리들 각자의 여행은 순전히 상상적일 뿐이다. 그것이 여행의 힘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누구든 남 못지않게 여행을 할 수 있다. 눈을 감는 것으로 족하다. 그것은 삶의 저편에 속한다.


나는 셀린의 이 문장을 허무와 냉소로 읽지 않는다. 오히려 정직함으로 읽는다. 여행이 대단한 진리를 주는 것은 아니며, 결국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고와 감정이라는 사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닐 뿐. 눈을 감는 것으로도 충분했던 내게, 눈을 뜨고 떠나는 일 역시 도움이 되었으니. 결국 중요한 것은 장소보다 내부에서 무엇이 움직이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어느 순간 목적이 아니라 계기가 된다. 외부적으로 넓어지다가, 별것 아님을 깨닫는 순간 안쪽으로 확 깊어진다. 그리고 그 깊이를 탐험하는 재미가 생긴다. 거듭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다니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Rainer Maria Rilke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유일한 여행은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릴케는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지만 결국 늘 자기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외부를 충분히 지나본 사람이 결국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또 그 사실에 나도 동의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외부의 넓이는 어느 순간 한계를 드러내고, 그 순간 내부의 깊이는 하나의 세계처럼 열린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모르는 세계.


그걸 두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시작을 도망이라고 불러보자. 도망쳐야 한다면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의 여행은 쉽지 않았다. 밖으로 떠나는 여행에는 표지판이 있고, 지도가 있고, 돌아올 시간이 있다. 그리고 다양하긴 해도 생각보다 큰 틀에서는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에는 그런 것이 없다. 어디까지가 길인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질문은 몇 년 동안 붙들어야 한다. 감정 하나를 이해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어떤 사고와 대상은 언어로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깊이를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망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결국 내 육체 정도까지이니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몰랐던 때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자의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본질적인.


나는 불편한 생각을 쉽게 놓지 않아 왔다. 오히려 불편할수록 더 오래 붙든다. 질문 하나가 생기면 몇 년이든 가지고 간다. 답이 없더라도 중간에서 놓지 않는다. 어차피 혼자만의 탐험이고 여행이다. 게다가 재미있다. 정신적으로는 몰아붙이는데 겁이 별로 없는지. 그래서 사유하는 순간은 늘 뜨겁고 날카롭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뒤다. 당시에는 매우 날카롭고 뜨거웠던 질문도 지나고 나면 조용한 문장이 된다. 경험할 때는 뜨거운 칼날인데, 문장이 될 때는 물처럼 흐른다. 안에서는 치열했는데 밖으로 나오면 차분해진다. 그래서 말은 단순해지고, 오히려 설명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문장이 존재로부터 두걸음 멀어진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보통은 그 과정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이 냉소다. 많은 사람들은 냉소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만, 단순하게 보기에는 흥미로운 데가 있다. 냉소라는 표면의 바닥에는 종종 다른 것들이 있다. 기대했다가 실망한 감정, 믿었다가 무너진 감정이 선택하는 표면의 모습이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너무 쉽게 의미를 믿지 않기 위해 생기는 간극의 표현. 하지만 육체는 세계의 흐름 안에 있다. 그렇기에 사소한 것은 물리적인 관계 속에서 자주 배신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국면은 달라진다. 미약하고 먼지같은 내가 하나의 본질적인, 중요한 것만을 안으로 꼭 붙잡고 간다면 그것으로 어떤가. 그러면 상처인지도 모를 상처쯤은 고통없이 지나가게 된다. 정확히는 고통이라는 자극이 내게 닿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다만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라는 점. 그 표면의 냉소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난다. 그 끝에서 오히려 따뜻함이 남는다. 모든 환상을 벗기고도 남는 미세한 호의, 거창하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열린 상태. 냉소는 존재를 향한 방법이 되기도 했다. 그 냉소 끝에서 다시 인간을 발견하는 셀린처럼. 진실로는 사람의 태도를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 내 경험처럼. 겉으로 보이는 차가움이 내부까지 차갑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서는 하나의 선택을 해야하니, 때때로, 적당히 한다.


어떤 여행이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냉정함과 따뜻함을 오가는 불균형과 어둠에의 두려움을 지고 걷는 길이다. 그리고 알지 못한 채 이미 넘어버리게 되는 순간들만 있다. 알 수 없는데도, 이전의 모르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돌아갈 것 같지도 않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따라온다, 여기서는. 두려움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사실로도 두려움이라면, 오히려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정도가 다라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어떤 감각일 수도 있겠다. 매일의 삶을 꽤 치열하게 살아가면서도, 미완의 내면의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갈 것이다. 이 길의 끝이 있다고 믿지도 않고, 감히 내가 그것을 끝까지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다만 그 ‘두려움’과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마음에 든다. 어둠 속이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한 탐험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가도, 가끔 그 어둠 속에서 빛이 아주 잠깐 드러난다. 아마도 그것이 계속 나아가는 이유이고,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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