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모르시더라구요.
"VMD가 뭐예요?"
내가 입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럼 난 우스갯소리로 답한다.
"V: 보이는 건 M: 뭐든지 D: 다 한다 의 약자예요."
그런데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묘하게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VMD의 사전적 정의는 Visual Merchandisesr(MD)의 줄임말로, '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판매장을 매력적으로 꾸미고 관리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MD가 상품을 선정, 소싱, 기획하는 역할이라면 VMD는 그 상품을 고객에게 더 잘,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일을 한다. 조금 추상적인 이 정의를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스포츠 의류 브랜드 매장
- 나이키 매장에 진열된 신발이다.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지는 백색 조명과 네온 컬러로 이루어진 공간 안에 신발이 들어가 있다. 제품의 기능성을 보여주는 와이어와 과학적인 느낌을 주는 소품들을 활용하여 인체공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탄생한 신발임을 보여준다. 왠지 이 신발을 신으면 우사인 볼트 뺨치는 기동력을 얻을 수 있을듯하다.
2. 남성복 브랜드 매장
- 백화점에서 남성복 매장을 지나간다. 한 매장에 눈길이 간다. 서재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각 잡힌 정장과 구두가 열을 맞춰 진열되어 있다. 일단 여기가 내 방이었으면 좋겠다. 고급스러운 조명과 책상, 그 위에 놓인 책들과 서류, 만년필 그리고 커피잔.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능력 있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며 왠지 이 옷을 사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것 같다.
이렇게 VMD는 브랜드의 상품을 혹은 브랜드 그 자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VMD가 하는 일에는 공간을 연출하는 디스플레이의 개념도 있지만, 매장에서 제품을 설명하거나 행사를 홍보하는 요소를 만들기도 한다.
위 이미지처럼 세밀하게 들어가면 제품의 이름과 가격을 알려주는 네임택이나 이달의 할인을 보여주는 포스터도 이에 해당한다. VMD는 MD와 같이 -er로 끝나는 직업을 의미하지만, 편하게 매장에서 연출에 활용되는 요소들을 VMD라고 부르기도 한다. (ex. VMD 좀 보내주세요.) 약 4년 동안 VMD로 일하면서 많이 들었던 질문을 위주로 조금 더 VMD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Q. VMD는 패션에만 한정되어 있나?
A. 아니다. 식품과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군, 아니 사실 고객과 만나는 공간이라면 VMD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또한, 우리가 길을 지나가면서 보는 쇼윈도 속의 화려한 디스플레이 외에도 진열장에서 제품을 설명해주는 POP, 이달의 행사를 보여주는 포스터(하단 이미지 참고)까지 모두 VMD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Q. 인테리어 같은 건가?
A. 비슷한 듯 다르다. 나무에 비유를 하자면 인테리어는 기둥, VMD는 가지와 같다. 인테리어가 브랜드의 콘셉트와 고객의 동선을 고려해서 공간을 나누고 가구를 배치하는 큰 틀을 잡는다면, VMD는 그 안에서 조금 더 세부적인 부분을 다룬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제품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해서 그 외의 요소들을 추가하여 진열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큰 차이점이라면 교체 주기다. 우리가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를 계절에 맞게 바꾸면서 분위기를 바꾸듯, 쉽게 교체할 수 없는 인테리어 요소들을 도화지 삼아 VMD로 매장의 분위기를 바꾼다.
Q. 예쁘고 보기 좋은 것이 최고인가?
A. 단연코 아니다. 예술적으로 제품을 진열하거나 전시장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것이 물론 보기에는 좋다. 하지만 디자인이 고객의 편의성과 마케팅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듯이, VMD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제품인지, 누가 그 제품을 사용할 것인지, 매장에 주로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등에 따라 들어가는 문구도 보여주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아래의 극단적인 예를 보면, 누가 봐도 심미성은 떨어지지만 홍보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십 리 밖에서도 보이는 글자와 가격에 한 번쯤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간단한 정의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VMD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말이지 "V: 보이는 건 M: 뭐든지 D: 다 한다 의 약자예요." 만큼 찰떡같은 설명이 없다.
딱 들으면 생소하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VMD의 영역인지 애매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여전히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제품 진열도 하고 행사 같은 거 안내하는 포스터도 만들고...'라며 구구절절 설명한다. 어디에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누가 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처음 VMD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후 얼마 없는 정보를 모으며 고생했던 것이 떠오른다. 어딘가에서 VMD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나를 위해 일을 시작한 후로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VMD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 고민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