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직원조차 외면한 제품, 다시 쓰고 싶게 하려면?

전반적인 개선 대신 핵심 와우 포인트부터

by 람다

목표를 위한 첫 MVP,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던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디지털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1차 목표는 사내 전문가들이 이 솔루션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 2차 목표는 같은 업무를 하는 타사에 판매하며 B2B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으레 하는 절차로 작업자들이 겪는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진행했다.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하고 개선되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그렇게 파악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MVP를 출시했다.



첫 번째 문제 정의와 MVP

1. 현장에서 종이나 태블릿의 메모장에 손으로 적는다. → 파손, 분실의 위험이 있고 적어온 내용을 하나씩 컴퓨터로 옮겨야 한다.

2.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 컴퓨터로 옮긴 뒤 손으로 기록한 내용과 매칭시켜야 한다.

수작업으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과 인력에 대한 부분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MVP 버전의 솔루션을 개발했다. 자동 백업도 되고, 따로따로 하던 작업을 하나의 솔루션에서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그냥 하던대로 할래요"

"..네?"



첫 번째 실패

image.png 익숙함을 버리기엔 부족했던 ‘와우 포인트’

분명 이전보다 편리해졌는데 왜 안 쓰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노력에 비하면 큰 효용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깨달았다. 전반적으로 조금씩 개선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편하다'라고 느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어떤 부분이 진짜 문제인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전문 인력만 접하는 낯선 분야였고, 나의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터뷰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으며 그것이 실패를 불러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해보고 옆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실제 작업자들이 일을 하는 현장 5곳에 따라갔고, 다녀온 뒤 내업을 보조하며 관찰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렇게 세 가지 핵심 문제를 재정의했다.



재정의한 핵심 문제

1. 동시에 봐야 하는 자료가 많아 헷갈리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2. 수작업으로 입력하다 보니 누락이나 오류도 일일이 검토해야 한다.

3.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소요 시간도, 결과물의 퀄리티도 천차만별이다.



두 번째 시도

이 세 가지 핵심 문제를 확실히 편하게 개선시켜주면 낯선 서비스 도입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 생각이 맞았는지 다시 기획하고 디자인한 MVP 버전에 대한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image.png

기존 방식을 고수하던 직원들이 한 번 사용한 뒤 먼저 다음에도 쓰고싶은데 대신 이 부분이 추가되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전했다. 정량적으로 업무 효율성이 올라간 지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전 방식에 비해 정보를 기록하는 속도는 29% 감소했고, 한번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같은 작업 기준 3배가 되었다.

점진적으로 기능을 개선하며 본격적인 세일즈를 시작했고, 외부 업체와의 계약도 성사되었다.



얻은 교훈과 결론

위에서 말한 정성적, 정량적 성과도 물론 유의미하지만, 이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이 무엇보다 컸다. 내부 직원에게 외면당한 첫 번째 버전에서의 문제 정의는 왜 실패했을까? 나름 자료를 조사하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존 방식의 문제점과 잠재 고객의 요구사항을 잘 정리했다고 착각했다.


예를 들어 'A를 위해 B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건 꼭 필요해요.' 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치자. 처음에는 B방식을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만들어줄까?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직접 현장을 따라가서 보니 B 방식 자체가 큰 걸림돌이었다. 이걸 아무리 편하게 해준다 한들 사용자가 느끼는 번거로움은 사라지지 않는 과제였다. 그래서 이후 버전은 B방식 자체가 필요없도록 A를 바꿔버리는 방향으로 기획했고 이것이 하나의 와우모먼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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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품을 사용자로 하여금 계속 사용하게 만드려면 무난한 한상차림 보다는 이걸 꼭 쓰고 싶게 만드는 킥이 담긴 한 접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현장 조사를 통해서 왔다. 현장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고 따라해보지 않았다면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겉핥기식의 개선안만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 것,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 좋은 솔루션의 시작점임을 알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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