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기세에서 밀리면 포기하게 된다.

편하게 포기할 것인가....'꿈틀'거리며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것인가

by 라뮈

쾅.쾅.탕.탕'


라라패리스에 가까워질 수록 공사장의 소음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설마'했던 마음이 진실로 다가오자 나의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라라패리스의 공용 잔디밭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여러 인원의 일꾼들이 고모의 집 다이닝 룸에서 테이블과 책장들을 빼내고 있었다. 책장 속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던 고모의 다양한 책들은 잔디밭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져있었다. 이 난장판에 화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고모의 집 다이닝룸 방향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마치 이 상황을 아무나 붙잡고서라도 따져 묻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단발머리의 그 젊은 여자는 나보다 더 사나운 표정으로 내 어깨를 '획'하고 밀친 것도 모른채 빠르게 다이닝룸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누구야? 누가 이렇게 우리 독서회장님 집을 망쳐놓는거야!! 이 책들 우리 회장님이 제일 아끼는 것들인데!!!!!"


나도 참지 못하고 옆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거들며 외쳤다.


"도대체 누구예요? 누가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그 때 마침, 잔디밭에 마치 필요없는 물건처럼 방치되어 나뒹구는 책들을 보니 참을 수가 있었다. 나는 쭈구려 앉아 널부러진 책들을 주워담으며 책표지에 붙어있는 흙과 잡초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단발머리의 젊은여자도 함께 책을 주워 깨끗한 바닥쪽으로 옮겨 차곡차곡 쌓아놓기 시작했다.


두 여자의 호통을 치는 듯한 큰 목소리에 놀란 듯 수많은 일꾼들 중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저희는 그냥 시켜서 하는 일이예요. 돈 받고 일하는 알바생이라고요."


그 일꾼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턱을 들어 내 뒤에 무언가를 보고 가르키는 듯 했다. 난 그 일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내 뒤를 쳐다보았다.


지운이었다. 내 사촌동생말이다.


나는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아빠 말로는 아직 집이 팔리지 않았다고 헸는데 지운이 마치 이 집의 안방마님마냥 일꾼들을 통솔하며 작업을 지시하는 모습이 솔직히 마땅치 않았다. 그녀는 고용된 일꾼들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으로 고모의 집안에서 이것저것 집기류를 꺼내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보나언니! 언니 맞지? 언니 여기 왠일이야?"


여유있는 지운의 모습과는 달리 나는 언짢은 기분과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쩐일이라니? 지금 너 고모 허락은 받고 이러는거야?"


나의 화가난 모습에 조금 당황을 했는지 지운은 마냥 해맑은 표정은 금새 심각한 표정으로 바꾸고 차분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뭐....고모네 라라패리스 아직 월세 안나갔다면서.... 아무래도 이 집 월세든 매매든 당분간 힘들 것 같다길래. 우리 엄마가 당분간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했어...지인찬스로 고모집 인테리어도 좀 해주고....뭐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고모도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하면 시골 할머니집에서 몇 년 요양할 예정이라는데....이제 라라패리스에 올 일도 없을 것 같고"


-"뭐라고?"


나는 지운의 마지막 말에 화가 났다. 이제 고모가 라라패리스에 올 일이 없을 것 같다니. 나라고 해서 고모와 큰 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운의 말이 건방지게 들렸던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들면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추후 상황에 대해서 예견을 하지만, 나이도 어린 아이가 벌써부터 이런 상황을 두고 애둘러 맹랑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말은 하지 말자. 사람 일은 몰라"


지운은 나의 단호하고 강한 말투에 잠시 놀란 듯 하더니 다시 일꾼들과 함께 무거운 가구와 집기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녀의 체력은 대단했다. 지운이는 어려서부터 태권도로 시작해 유도까지 배운 유단자였다. 우리 아빠는 작은 아빠에게 그다지 부유한 집도 아니면서 딸에게 무슨 유도까지 시키냐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매사 실용성과 활용성을 따지는 아빠에게는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쓸떼없는 짓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운이는 매사 실행력이 좋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능동적이었다. 대학입학 취업, 연애, 결혼까지 속전속결로 본인이 원하는 계획대로 몰아부치는 능력이 대단했다. 지운이는 그 비결에 대해 강인한 체력을 꼽았고 어렸을 때 부터 운동습관을 들여왔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작은아빠는 욕심이 많아서 주변에서 안 좋은 평을 듣기도 하지만 딸에게 운동을 꾸준히 시켜왔던 것 처럼, 나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난리가 난 라라패리스의 공사판에서 나는 현기증이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이미 라라패리스로 입주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그것도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다 뜯어고쳐가면서 말이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기가 빨리는데 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 그대로 무기력하게 주저 앉을 것인가? 나는 바닥까지 남아 있는 나머지 기운들을 끌어모아 바닥에 나뒹구는 책들을 줍기로 했다.

이 책들이 잔디밭에 버려진 것 마냥 처럼 마구 놓여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닥이 깨끗한 공간에 옮겨두고 싶었다. 그것 마저 실행할 에너지가 없다면 영영 라라패리스와의 인연은 끝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힘겨운 모습으로 '낑낑'대며 책을 줍기 시작하자, 단발머리의 여자가 내 옆으로 오더니 함께 책을 줍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저기 저번에 양순언니가 소개해줬던...우리 독서회장님 조카 맞죠? 저는 서윤이라고 해요. 같은 독서동아리 모임을 하고 있고......나름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이예요"


-"아...네...안녕하세요"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고는 책에 붙은 흙과 먼지를 떼어내는데 서윤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거 우리가 10년동안 힘들게 모은 책들인데...다 소중한 추억인데....흑흑...근데 우리 회장님은 정말...그렇게 몸상태가 안 좋은거예요? 이제 다시 라라패리스에 못 오는거예요? 분명 병원에서 봤을 때는 다시 온다고 그랬단 말이예요..흑흑"


서윤은 말을 하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내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서윤의 '엉엉' 우는 모습에 당황을 했다. 나도 고모의 몸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알고, 그 이후에 대해서 예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오랜 시간 교류가 없었던 탓일까. 이렇게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정을 쌓아놓은 상태는 아니였기에 생판 남인 서윤의 눈물에 적잖이 당황을 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토닥여주었다. 누군가를 살갑게 위로하고 다정하게 구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녀의 눈물이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뭐야...내가 라라패리스를 고작 몇번을 봤다고....고모를 생각하는 척, 이 집을 소중히 여기는 척, 척척척 거리고 있는거야. 내손으로 책 주을 힘도 체력도 없어서 '낑낑' 거리고 포기할까 고민하잖아. 이렇게 지운이에게도 추진력하고 기세가 밀리는데.'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운에게도 그 기세가 밀리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서윤의 눈물이 그칠때까지 다독여주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디밭에 나뒹구는 이 책 모두를 빨리 주워서 다른 공간에 놓아두고 싶었다. 그런 기세까지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라라패리스 안 쪽에서 지운은 다이닝룸의 새로운 테이블의 디자인과 사이즈를 논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너무 힘들었다. 돌같은 무게의 책들과 책장을 옮기는 것이 이렇게 힘겨운 일인가 싶었다. 다 때려치고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울음을 그친 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느새 나와 함께 바닥에서 책을 줍고 있었고, 어느새 마른 수건을 가져와 책의 먼지까지 털었다. 순간이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자라는 기분이 함께라는 기분으로 바뀌었고 서로 '으쌰으쌰'하면서 에너지를 돋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으쌰으쌰'하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라라패리스의 내부 공사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쾅. 쾅. 쾅'


이대로 기세가 밀릴 것인가.....이대로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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