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떠오르는지?
나는 엄마, 아빠의 싸우는 소리를 더 자세하게 들어보기 위해 현관문에 몸과 귀를 붙이고 집중해 보았다.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지운이가 결국 그 라라패리스에서 지내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서울로 출퇴근은 가능한 거리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 보나를 라라패리스에서 지내기로 했었어야지. 애 고모도 그걸 원했고. 당신은 어떻게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
지운이는 큰 아빠의 딸, 그러니까 내 사촌이었다.
"무슨 소리야. 보나가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결국 기영이의 간병은 내 딸 몫이 될 수 있어. 시간 남아돈다는 애가 심부름한답시고 병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취업도 결혼도 안 한 애가 결국은 간병의 짐을 짊어지게 될 거야! 나이도 적지 않다 보니까...... 그렇게 될 수 도 있어. 그런데 난 그렇게는 못해. 기영이는 내 동생이야. 내 형제들과 해결할 문제고. 보나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그것도 그렇네...... 그러면 지운이는 왜?"
"그래도 지운이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니까 밤낮으로 일 때문에 바빠. 결혼, 임신 준비까지 하고 있고. 나이도 아직 어려서 누굴 돌봐줄 시간도, 여력도 안 된다는 걸 온 친척들이 다 알고 있다고!!"
-"그러다 보면 보면 자연스럽게 라라패리스는 형님네 집이 될게 뻔해. 그 집안 욕심 몰라요? 아무리 당신 형이라지만, 자기 피붙이인 기영이, 딸한테 부모 재산 조금 떼서 물려주는 것 가지고도 말이 가장 많았던 큰 아주버님 하고 형님이었잖아!! 욕심도 많으시지. 이제 와서?"
"아니야. 시기적으로 월세가 나갈 시기가 아니어서 그래.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다 나가게 돼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어쨌든 라라패리스 관리도 나한테 맡긴 건 기영이었고"
나는 엄마아빠의 대화를 듣고 나서 마음의 혼동이 오고 있었다. 라라패리스에 내 사촌인 지운이가 들어가서 살게 될 수도 있다니. 왠지 모르게 아까운 생각이 들면서도 의아했다. 다녀와봐서 잘 알지만 변두리 촌구석이라 지운이가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운이는 에너지가 넘쳐서 도시생활과 잘 맞는 아이였다. 어른들의 대화는 어려웠다. 분명 지운이도 거절할 텐데 왜 이야기가 이렇게 돌아가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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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깥에서 어두운 밤이 올 때까지 주변 골목을 어슬렁 거리다가 집에 돌아왔다. 대충 엄마아빠가 먹다가 남긴 반찬들과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오로지 라라패리스에 대한 것만 떠올랐다.
'한 달에 60이면 이면 일 년에 720...... 내가 일 년만 가서 살아도 될 듯할 텐데? 나도 이 정도 돈은 있단 말이야'
나는 라라패리스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집 안의 다이닝룸을 작은 서점처럼 꾸며놓은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웅이도 순하고 귀여웠다. 물론 그곳에서 만난 양순이라는 중년 여성이 호미를 들고 설치는 판에 놀라긴 했지만, 우리 고모를 생각해 주는 마음으로 보아 나쁜 이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의 꿈같은 카페 '달. 카페'도 또 가고 싶었다. 엄마아빠의 다툼으로 인해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됐지만, 라라패리스에 대해 자석처럼 끌리는 나의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평화로는 평일 오전이었다. 얼마 전 퇴직한 아빠는 오래간만에 커피와 함께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아빠의 대화소리도 나긋나긋하고 평화로웠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나는 '쭈뼛쭈뼛' 어색하게 엄마아빠에게 무슨 발표라듯 하겠다는 듯이 서있었다.
"저기 있잖아.... 그 라라패......"
엄마아빠는 다급한 목소리로 내 말소리를 끊었다.
"안 돼!!!"
-"안 돼!!!!! 말도 꺼내지 마!!"
다소 큰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었고, 이 공간에 내가 더 남아있으면 큰 싸움으로 번질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황급히 이 상황을 수습을 하기 위해 겉옷을 챙기고서는 현관문을 나섰다.
"아니... 그냥 라라라.... 나갔다 온다는 말이었어"
나는 아무 말이나 한 채로 옷을 입고서는 집을 빠져나왔다. 역시 오늘도 갈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드나드는 서점이나 중앙도서관, 공원에 가기에는 유톡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첫 번째로 오는 버스를 잡아 탔다. 버스를 타니 따듯한 히터가 나오고 있었고 편안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내 몸이 기억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라라패리스로 향하고 있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고, 지하철에 내려서 결국 라라패리스로 향하는 마을버스까지 타게 됐다.
나는 주머니에 양손을 구겨 넣고는 먼 곳에서 라라패리스 101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모의 집이 자꾸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어제는 꿈속에서도 나왔기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엄마아빠에게 고모와 라라패리스에 대해 질문을 꺼내려고 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고, 물으려고 하면은 '쓸데없이 그런 건 왜 묻고? 왜 이렇게 관심이 많냐?'라고 구박을 했다. 내가 이렇게 몰래 고모의 집을 두 번이나 찾아왔다고 하면 분명 아빠는 화를 낼 것이다. 괜찮다. 이런 사실쯤은 이젠 티 나지 않게 숨길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라라패리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의 '쾅쾅'거리는 공사장의 소음도 귀에 잘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이상한 집착을 하고 있었으리라. 온 김에 다이닝룸의 책들만 구경하고 싶었다. 웅이도 보고 싶었고.
그런데 오늘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해서인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는 한 참 고민 끝에 '달. 카페'에 들려서 커피나 한 잔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찬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에, 맞은편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한 젊은 여성과 부딪히고 말았다. 부딪힌 팔뚝이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아!'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게다가 그 여자는 '헉헉'대며 급하게 고개만 '까딱'하고는 다시 재빨리 뛰기 시작했다.
다 큰 여성이 이렇게 급하게 뛰는 것도 놀랐거니와 이렇게 세게 부딪히고도 사과한마디 없이 자기 갈 길만 가는 이 여자에 대해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팔이 너무 아프다 보니 "이렇게 세게 부딪히고도 사과를 안 해요?"라고 대꾸라도 하려고 보니 이미 저 먼 길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황당해서 달려 나가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뒷모습만 보아도 그 급한 상황이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왠지 그 여자의 뒷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옆모습을 보니 옆모습도 낯설지가 않았다.
"누... 누구지? 누구였지?"
똑 단발을 한 젊은 여성..... 어디서 본 듯한 여성.....
"누구지?"
생각해 보니 '달. 카페'에서 봤었던, 양순과 대화를 나누던 젊은 여성이었다. 우리 고모에게 '독서회장님'이라고 말하던 그 여성말이다. 그녀는 라라패리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사소리가 더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마냥 주변의 공사장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소리의 방향을 찾아보니 라라패리스에서 나는 것 같았다.
'뭐야? 진짜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나는 그 젊은 여성의 뒤를 따라 라라패리스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