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라라패리스를 맡길 만한 사람

달콤쌉싸름한 시나몬라떼로 피곤했던 하루를 마무리

by 라뮈

'쿵. 쿵. 쿵'


애석하게도 라라패리스의 내부에서는 시끄러운 공사소리가 지치지 않고 바깥까지 요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뭘 그렇게 부수고, 고쳐대는지. 내가 볼 때는 낡았지만 세월의 흔적이 어느정도는 느껴지면서도 정감있는 집이었다. 그러면서도 고모의 취향과 깔끔함이 느껴져서 조심스러웠다. 함부로 내가 침범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새삼 지운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것들은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단장하려는 그 의지와 추진력이 확실히 남달랐다. 그것도 그 아이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끼이이이익................'



그때였다. 라라패리스의 잔디밭 공용 대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이 상황들은 뭐야? 누가 감히 내 허락도 안 받고 이 일을 벌이는거야? 누굴 산 송장으로 아나!!!!!"


다름 아닌 고모였다. 날이 선 목소리 때문인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얼음이 된 듯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빛을 한 채 보랏빛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거동이 꽤나 힘든지 환자용 워커를 이용해 겨우 서있었고, 옆에는 간병인으로 보이는 어르신도 함께 있었다. 화가 많이 난 듯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라라패리스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미친거 아니야? 누구야?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거야? 당장 나와!!!"


-"고...고모...!"

-"회장님!!!!!!"


나와 서윤은 고모의 등장에 놀라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고모의 등장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가웠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도 미쳤었나봐. 이 상황에 지운이의 체력과 추진력만 찬양하고 있었잖아. 맞아. 이 집 주인은 우리 고모였어. 라라패리스 101호는 당연히 고모꺼라고. 지운이랑 작은아빠네 가족이 제멋대로인데다가 맹랑히게 판단했던거였다고!! 이건 선을 넘은거잖아!!'


나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또렷하게 깨울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고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얗다 못해 창백해보이는 고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어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몸을 워커에 지탱해 보이는 모습은 안쓰러워보이기까지 했다. 배가 아픈지 자꾸 손을 배에 가져다대면서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건 누가봐도 중증으로 아픈사람이었다. 나는 고모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몸이 잠시 아팠을 뿐이지 막연히 괜찮아질꺼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상태가 이정도로 심각해졌을지도 몰랐다. 지난 번에 쓰러졌을 때 보았던 모습은 지극히 얼굴빛도 컨디션도 정상이었기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현재의 고모의 모습을 마주하니 놀랍기도 하고, 지독한 현실이 눈 앞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내 기억속의 고모는 항상 부드럽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마주한 고모는 상당히 단호하고 엄격함을 넘어 시니컬한 사람인 듯 보였다.


지운이 고모의 화난 목소리를 듣자 하던 공사를 멈추고 라라패리스 밖으로 나왔다. 적잖이 당황스러워 보였던 지운은 난감하면서도 겁먹은 표정이었다.


"아...고모...오셨어요"


고모는 잠시동안 지운을 노려보는 듯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작은오빠에게 췌장이 안 좋다고 말한게 화근이었네. 금방이라도 죽을 껄로 예상했나보지?"


-"아...그게 아니라. 고모가 없는 동안에 집수리도 좀 하고 단장도 하려고 했어요. 지인이 인테리어업을 해서요. 그런 의도는 아니였어요. 고모"


고모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지운의 모습은 꽤나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야생마 처럼 라라패리스 이곳저곳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기세는 어딜가고 없었다. 고모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는 듯이 말했다.


"야...꺼져. 나가.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아...고모 여기 제가 지인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좋은 자재로 인테리어하고, 가구도 주문해놨는데.......오늘 부른 전문인력도 어마어마 하고요"


"야 꺼지라니까. 여기가 니네 집이야? 너 결혼한다매? 너네 신혼집이나 그렇게 때리고 뿌셔!! 남의 집에 와서 너 뭐하는 짓이니? 너 나랑 친해? 나 더 이상 가타부타 말 할 힘도 없어. 꺼져 제발"


고모의 사나운 말투에 놀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반가워서 함박웃음을 짓던 서윤도 고모의 모습에 놀랐는지 내 옆에 딱 붙어서는 어쩔줄 모르고 눈치만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한참동안 라라패리스의 잔디 앞마당은 숨막히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운의 낮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철수합시다. 오늘은 철수합시다"


지운의 철수명령에 일꾼들은 눈치를 보며 하던 일을 멈추었다. 서로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모는 지운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 오늘은 철수하고 다음에 또 와라. 네가 네 멋대로 난리쳐놓은건 다 정리해놓아야지. 다시 원상복구 하러 또 오라고"


이렇게 영영 라라패리스를 떠나보낼 것 같았는데 다시 되돌릴 수 있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진짜 주인공이 등장해서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고모는 짜증난 얼굴로 지운을 쏘아보더니 그 다음은 나를 쏘아보았다.


"보나야! 너 집 살 돈 있어? 너 먹여살릴 남자 있어? 혹은 괜찮은 직업 있어? 무슨 자신감이야? 언제까지 그렇게 주어진대로 살껀데? 부모님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지 말고, 알을 깨보려는 시도는 해봐야 할 꺼 아니야"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거 아니야. 그냥 살고 있으니까. 살고 있는 상태야. 나한테 너무 몰아치지는 말아. 나름 나도 살겠다고 겨우 열심히 살아냈어. 겨우 하루하루 살아내는 사람이 그 시도란거 한 번 잘못 선택하면, 영영 무너지는 경우도 있어. 그 무너짐이 얼마나 두려운건지 그런거 모르잖아. 고모는."


"......그러니까. 한 번은 용기를 내보라고. 내가 이렇게 기회를 주잖아. 나도 십여년 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잃고, 연인이랑 헤어지고 힘들었어. 그런데 라라패리스때문에 살았어. 우리 웅이 때문에 살았어. 한 번은 그 안전한 울타리 나와보라고. 기회있을 때"


"나도 그러고 싶어....라라패리스에서 살고 싶어...그런데...그런데....아빠가....반대해"


"나 때문에 그래? 나 당분간 병원에서 꼼짝못해. 약물치료도 꾸준히 받아야 하고. 지운이 예상대로 다시 라라패리스에 영영 못 올수도 있어. 내 곁에는 직업정신 투철한 간병인 여사님이 계시니까 걱정하지마. 그리고 너네 아빠도 나름 내 형제라고 가끔 와서 내 잔심부름도 해준다? 그건 몰랐지?...... 그냥 단지 네게 라라패리스랑 달카페의 이웃들, 웅이 안부를 묻는 정도만 부탁하고 싶을 뿐이야. 이들이 나를 살게 했으니까...이런 라라패리스를 잘 지켜낼 사람, 맡겨도 될만한 사람... 내 조카 보나. 그냥 너 밖에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어. 그 뿐이었어"


.

.

.




라라패리스에만 다녀오면 내 에너지를 몽땅 쏟아 내고 오는 기분이다. 오늘도 나는 지쳤다. 피곤하게 라라패리스를 제멋대로 때리고 부쉈던 지운이. 부서지는 라라패리스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서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이 상황을 단숨에 정리한 고모까지. 이상황을 지켜보자니 내 하루의 기운을 영혼까지 탈탈털린 기분이었다. 오늘 달.카페 들리려고 했더니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해 내린 후 집근처 번화가의 카페에 들려 달콤한 시나몬라떼 한 잔을 시켜먹기로 했다. 아까 무거운 책들을 옮기고, 연신 먼지를 털어낸 탓인지 한 쪽 팔이 쑤셔왔다. 그리고 고모의 몸 상태를 보고 난 후 마음이 심란해진 나는 카페인이 필요했다. 밤에 커피를 먹으면 잠이 오질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셔야 하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줄 달콤쌉쌀한 시나몬라테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금, 토, 일 연재
이전 16화16. 기세에서 밀리면 포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