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흔히 제가 '범죄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들은 이렇습니다:
"CSI 되는 거야?"
"프로파일링 하는 거야?"
"내 마음 그럼 다 알겠네"
"아~ 범죄심리학!?"
공부를 막 시작했을 시절에는 이러한 말들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범죄학'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간결히 설명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저 "그런 것도 하기도 한다"는 말로 중립 점을 찾았고요.
범죄학 박사가 된 지금, 이제는 '범죄학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면 술술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물론 교과서에의 범죄학의 정의는 '범죄와 관련된 제반 학문'이라고 간단히 명시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 "범죄와 관련된 제반 학문을 공부한다"라고 하기엔 부가 설명이 너무 많이 필요한 것이죠. 특히 범죄학이 가진 학문적 성격이 이러한 명확한 설명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 과연, 범죄학은 무엇을 공부하는 것일까? '범죄와 관련된 제반 학문'이란 대체 무엇일까?
'범죄학'의 사전적 의미
단순히 생각해보면 범죄학은 '범죄를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아주 틀린 정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올바른 정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충 범죄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범죄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하면 범죄를 일선에서 해결하는 경찰학이나 그들의 처벌에 대해 논하는 법학이 있을 텐데, 그럼 이 '범죄학'이라는 건 뭘까?
먼저 다양한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범죄학'에 대해 알아봅시다.
범죄학 [criminology , 犯罪學]
범죄와 범죄인(犯罪人) 및 형벌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종합적인 학문.
형사학(刑事學) 또는 형사정책학(刑事政策學)과 대체로 같은 학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범죄심리학 ·범죄사회학 ·범죄 생물학 ·범죄 정신병리학 ·범죄수사학 ·형벌학 등으로 나누어진다.
출처: 범죄학 [criminology, 犯罪學] (두산백과)
범죄학 [criminology , 犯罪學]
범죄의 발생과 그 원인, 그리고 대책을 탐구하는 학문분야로서, 사회학, 심리학, 법학, 경찰행정학 등의 다양한 부문에서 접근하는 학제적 분야이다.
범죄학이 가장 발달한 미국의 경우에 대부분 사회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미국의 범죄학자 에이커스(Akers)에 따르면, 범죄학의 분야는 크게 ① 법의 제정과 집행을 연구하는 분야와, ② 범죄의 원인을 연구하는 분야, 그리고 ③ 범죄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는 분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번째의 범죄의 원인을 연구하는 분야로서, 좁은 의미의 범죄학이라고 할 때는 주로 이것을 말한다.
출처: 범죄학 [犯罪學, Criminology] (경찰학 사전, 2012. 11. 20., 법문사)
범죄학 [criminology]
1870년대 인류학자 토피 나르(Topinard)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8세기와 19세기 초의 교도소 관리의 필요로부터 출현한 학문으로, 공통된 접근이나 방법보다는 '범죄'라는 공통된 문제에 대해 연구하였다. 처음부터 그것은 통계학자, 법률가, 의사, 심리요법가, 심리학자, 사회학자에 의해 연구되어 왔다. 범죄학에 관한 특수 학술지의 발간과 다양한 학문 종사자 간의 협동연구, 범죄학을 그 자체만의 절차와 내용을 가진 구별되는 하나의 과학으로 만들려는 시도 등으로 '범죄학자'는 하나 이상의 학문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는 기대 등에 의해 그 취약성이 보완되었다.
범죄학은 저자와 저술의 구성요소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범죄의 원인과 기원, 범죄자의 행위, 범죄에 대한 정보의 적합성, 범죄 방지와 처리 정책의 형성 등에 대하여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기 사회학자들은 일탈 사회학을 절충주의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인 범죄학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선언을 하였다. 범죄에 관한 급진적 사회학자들은 일탈 사회학의 결점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를 급진적 범죄학자라고 천명하였다. 따라서 '범죄학'이라는 용어는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출처: 범죄학 [criminology] (사회학 사전, 2000. 10. 30., 사회문화연구소)
어느 단체에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약간씩 다른 색채를 띄고 있지만, '범죄학'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먼저 밝혀야 할 것은 먼저 1. '공통된 문제(범죄)'로부터 그 학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공통된 주제를 통해 다양한 응용학문이 생겨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주체(이 경우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은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문이 긍정적이거나, 혹은 중립적 (관리, 행정 등) 임에 반해 범죄학은 명확하게 부정적인 것을 공부합니다.
가장 비슷한 학문이라면 인체의 병(부정적인 주체)을 제거하는 의학으로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병'의 경우 모호한 경우가 없고 무조건 없어져야 좋은 것이며, 그 방법은 '제거'라는 명확한 방법도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으나, 범죄의 경우 사람 사이의 감정이나 깊은 골이 얽히고설켜 무엇이 '범죄'인지를 판명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생기고, 범죄를 처리하는 과정도 그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예: 인권)에 부딪혀 단순히 해결되는 것은 오히려 더욱 어렵습니다.
범죄학의 정의에서 다룬 다른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면, 2.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접근 가능한 학제적(interdisciplinary) 분야라는 것입니다.
'학제적(學際的)'이라는 것은 사전적으로 '둘 이상의 전문 분야에 걸친 학문상의 영역 및 그와 같은 영역의 연구에 관련된 것, 둘 이상의 전문 분야에 걸친 학문상의 영역 및 그와 같은 영역의 연구에 관련된'의 뜻으로, 여러 가지 학문이 연관되어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영어로도 inter-disciplinary라고 띄어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위 정의들에 따르면 범죄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은 사회학, 심리학, 통계학, 생물학, 법학, 의학, 경찰행정학, 통계학 등 사회과학부터 자연과학, 행정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범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혹은 '형사정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응용성을 가진다면 그 어떤 학문이라도 '범죄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쉽게 생각해, 범죄자의 심리를 공부하면 '범죄 심리학', 범죄자가 우리 사회에 몇 명이나 있는지를 조사하면 '범죄 통계학', 범죄자가 어떠한 사회에서 더욱 많이 생겨나는지 공부한다면 '범죄 사회학', 범죄자가 남긴 지문, DNA 등을 공부한다면 '범죄 생물학', 형사법을 공부하게 되면 '범죄 법학(형사법학)', 범죄에서 일어난 피해자 시신을 부검한다면 '범죄 의학(법의학)' 등으로 무한히 파생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범죄학을 공부하고 그 안에서 특정 학문을 공부한다라고 하는 것도, 반대로 특정 학문을 공부하는데 주제가 범죄이다 하는 것도 모두 '범죄학'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이 범죄학이라는 학문의 유연성입니다.
마지막 특징은 3. 어떤 학문을 기본으로 '범죄학'을 하든, 범죄학 내에서의 주제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경찰학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범죄학자 에이커스(Akers)의 분류에 따르면 ① 법의 제정과 집행 연구 ② 범죄의 원인 연구 ③ 범죄에 대한 대책 연구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사회학 사전에서도 범죄학의 주제를 범죄의 원인과 기원, 범죄자의 행위, 범죄에 대한 정보의 적합성, 범죄 방지와 처리 정책의 형성으로 나누고 있어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의 제정과 집행 연구의 경우 법학과 경찰학이 이에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 이 두 분야는 어찌 보면 '범죄학'에서 이미 전문성을 갖춰 개별 학문으로 자라 집혀있던 분야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의 원인을 연구하는 것이 정통 '범죄학'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범죄자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주장하는 범죄사회학, 심리적인 문제로 생겨났음을 주장하는 범죄심리학이 대표적이고 많은 경우 사회심리적 현상을 동시에 고려합니다. 범죄에 대한 대책 연구는 범죄가 일어난 후 사후처리과정과 예방을 연구 주제로 다루는 것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명확히 한 학자가 한 가지의 주제 혹은 학문을 공부한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한 범죄학자가 있습니다. 이 범죄학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정치사범에 대한 관심이 생겨 정치적 범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범법을 저지르는 정치인들에 대한 심리사회적 배경이 이러한 범법을 저지르게 한다는 관련 연구로 유의한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논문으로 이 범죄학자는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정치 범죄자의 원인뿐만 아니라 처벌 및 예방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범죄 정치학자'가 되는 걸까요? 학위에는 '정치학자'임만을 밝히고 있지만 연구의 과정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적 접근법을 썼고, 이후 처벌 및 예방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 학자가 연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학제적'인 학문의 특성이 보이게 됩니다. '얼마나 깊이' 혹은 '얼마나 넓게', 혹은 '얼마나 다양하게'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본인의 선택이 되는 것이죠.
범죄학자(혹은 여느 학자)를 만나면
이제 범죄학이 대략 무엇인지 알았으니, '대충 그런 것들 중 하나를 하는구나'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엇을 공부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주 드문 기회로 범죄학자를 만나시게 된다면 (일반적인 다른 학자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시면 대체로 원하는 답변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주로 공부하나요?"
저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학부 배경은 '공학'과 '사회학'입니다. 이 배경을 가지고 저는 범죄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 저는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된 여러 가지 학문적, 개인적 한계로 인해 '범죄의 발생'보다는 '범죄의 예방'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 여기게 되었고, 주제를 비단 아동 대상 성범죄뿐 아니라 '다양한 범죄의 예방'으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한 줄 대답으로 한다면,
"저는 범죄 예방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되겠군요.
범죄학(Criminology)? 형사정책학(Criminal Justice)?
두산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범죄학은 '형사학(刑事學) 또는 형사정책학(刑事政策學)과 대체로 같은 학문'이라고 합니다. 이제 범죄학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대체 이 '형사정책학'은 또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대체로 같은 학문이라는 것은 대체 얼마나 같다는 걸까요?
형사정책학 [刑事政策學]
넓은 뜻의 형사학의 한 분야.
형사 정책론이라고도 한다. 넓은 뜻으로는 범죄의 원인을 탐구하여 범죄 방지대책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며, 이 뜻의 형사정책학에는 사회정책 ·교육정책 등 일체의 범죄 대책이 포함된다. 좁은 뜻으로는 직접 범죄 대책을 목적으로 하는 현재의 여러 제도를 비판하고, 이를 개선 ·보충하는 방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출처: 형사정책학 [刑事政策學] (두산백과) 中
형사정책학은 좁은 의미로의 범죄학(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연구)에 다양한 범죄 대책이 포함된 학문을 일컫습니다. 범죄학은 나름 순수학문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범죄의 근원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형사정책학의 경우 범죄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고, 수행하고, 평가하는 일종의 정책학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범죄학과 형사정책학의 학문적 발달이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온 미국의 경우 학계에서 '범죄학(Criminology)'과 '형사정책학(Criminal Justice)'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학과의 이름이 구분되어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회나 학술지 등에서도 구분 없이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어, 구분을 두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 '범죄학자가 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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