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웃어줘서 고마워

알아보는 건가?

by JEON

유튜브에서 아기와 엄마가 퇴근하는 아빠를 마중 나가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빠를 발견한 아기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아기도 나를 그렇게 반겨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요즘은 아기와 관련된 SNS 영상이 넘쳐난다.
우는 아기, 웃는 아기, 옹알이하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기는 참 사랑스럽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영상 속 아기의 모습과 현실 속 나의 육아는 꽤 달랐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3개월 동안, 나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아기는 울고, 먹고, 자는 일을 반복했고, 우리는 교대로 아이를 돌보며 하루를 보냈다.
2시간마다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초반 100일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시간을 집에서 함께 보냈기에 다행히 아내와 큰 다툼은 없었다.
만약 내가 회사에 복귀한 상태에서 이 시간을 보냈다면, 육아는 더 힘들고 부부 갈등도 많았을 것이다.

3개월이 지나 복직했다. 회사에 적응하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홈캠을 보며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퇴근 시간을 물어보더니 아기를 데리고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나는 설렜다. 처음으로 아기가 마중 나온다는 소식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에서 아내가 유모차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에게 인사를 건넨 뒤, 아기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기는 나를 보고 웃지 않았다.
아니,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기의 관심은 온통 나무, 간판,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쏠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유모차에서 아기를 꺼내어 안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아기가 웃지 않아도, 나를 알아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뒤로도 퇴근길 마중은 몇 번 더 이어졌다.
아기가 마중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퇴근길 발걸음이 빨라졌다.
'오늘은 웃어줄까? 나를 알아볼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어느 날은 웃어주었고, 어느 날은 반가운 기색 없이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아이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6개월이 지나고, 이제는 정말 아기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퇴근길에 나를 보며 뭔가 아는 듯 활짝 웃어주는 아기의 얼굴을 보며 나도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이렇게 환하게 웃어준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웃음을 보고 이렇게 기분 좋아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보고 먼저 반가워서 웃어준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내 웃음이 누군가에게 이런 행복을 준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오랜만에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웃음 속에도 진심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기가 나를 보고 지어주는 웃음은 조금 달랐다.
그 웃음에는 아무런 계산도, 조건도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 웃음을 보며 마찬가지로 조건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우리의 웃음은 계산적이고 형식적이 되었을까?
사회적 기대와 역할 속에서 우리는 점점 진심을 숨기고, 무언가를 의식하며 웃음을 짓는다.
반면, 아기의 웃음은 마치 거울처럼 내 마음속 가장 순수한 곳을 비추었다.
‘내게도 저런 맑고 깨끗한 웃음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기의 웃음을 통해 나는 잃어버렸던 순수한 감정의 흔적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 순수함을 곁에 두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아기의 웃음이 내게 알려준 따뜻한 감정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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