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새끼손톱만 한 기미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까매졌나 보다. 미용실을 다녀와도, 옷을 사 입어도 잘 모르던 남편이 내 얼굴의 기미를 알아볼 정도니. 심각함을 크게 깨닫고 피부과를 예약했다. 운동 삼아 걸어서 갈 수 있는 20분 거리의 이 피부과는 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기도 하지만 나름 잘한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예약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이미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작복작 앉아서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접수를 마치고 구석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의 면담과 실장님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무슨무슨 레이저 치료를 기본 10회로 한 번에 결제를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관리를 해주며 횟수를 더 늘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부 치료가 처음인 나는 무슨 레이저로 어떤 치료를 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되묻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잘해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너무 무식해 보이면 뒤통수 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일시불로 통 크게 결제를 하고 다시 대기를 했다.
마침내 이름을 불러서 찾아 들어간 그곳. 분위기 있는 노란색 조명이 어둡게 깔린 곳에는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4개의 베드가 나란히 있었다. 사물함에 옷가지를 챙겨 넣어두고 피부관리사의 친절한 목소리와 손짓에 따라 한쪽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자니 민망하고, 얼굴에 뭔가를 할 거라 짐작했기에 부끄러운 시선을 재빨리 숨겼다.
선크림을 발랐다고 하니 클렌징을 시작했다. 부드러운 손길에 기분이 이상했다. 낯선 사람의 세심한 터치가 어색하고 민망했다. 두 손을 맞잡고 약 10분의 시간을 견뎌냈다. 빨리 끝내라는 마음의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뭔가를 설명해 주었던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처음이라 마취를 할 것이며 아플 것이란 말밖에.
얼굴 전체가 얼얼해진 상태로 레이저실에 들어갔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아래에는 아늑한 방이 꽉 찰 정도로 커다란 레이저기계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이 초조하고 긴장됐다. 난 다시 한번 두 손을 맞잡고 떨리는 마음을 추슬렀다. 레이저치료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아팠다. 일정 간격의 짧은 백색소음에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충격적이다. 이렇게 아픈 줄 알았다면 피부과 치료를 받지 않았을 거다.애 낳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애를 낳았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난 고통을 참으며 치료를 받았다.
약 열흘정도 매일같이 약을 바르고 습윤 밴드를 교체해 가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거울을 보았다. 딱지가 떨어지고 기미가 있었던 자리에는 흐릿한 형체만이 자리하고 있었고, 점이 있었던 자리엔 빨갛게 파여 있었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까맸던 흔적들이 흐려졌다. 앞으로 9번만 가면 된다. 조만간 다시 갈 피부과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렵다.
생채기가 생기면 바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치료하면그만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버려 두면 상처는 결국 점이 되거나 흉터가 생긴다. 생채기도 그러한데 마음의 상처는 어떠할까. 작은 실수에는 사과 한마디면 된다. 작은 실수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게 쌓이고 쌓여 더 큰 상처가 되는 법이다.
피부과를 다섯 번쯤 갔을 때였다. 항상 월요일 오전 10시에 예약을 하고 갔는데 같은 시간에 예약한 다른 분이 있었다. 그래서 비슷한 시간에 접수를 하고, 먼저 온 사람부터 피부 관리실에 들어가 시술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니 그분보다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시술을 받고 관리를 받는 게 좋은데, 기다려야 하는 상황 때문에 관리받고 시술받는 상황은 괜히 싫었다. 결국 혼자만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1~2분 차이로 늦게 접수를 하게 되어 다른 피부관리사가 나를 불렀다. 같은 순서대로 똑같이 진행했는데도 느낌이 다르다. 피부관리사의 친절함은 같지만 세심한 터치에 차이가 있다. 경력이 없는 걸까, 아니면 조심스러운 성격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계속 같은 피부관리사에게 관리를 받은 까닭에 그게 익숙해져서? 너무 가벼운 손길에 클렌징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다. 처음으로 피부관리사 터치의 만족도를 스스로 평가하게 되었다. 역시 뭐든 경험을 해봐야 해.
레이저치료를 받고 마지막으로 팩 관리를 받을 때였다. 동그란 그릇에 팩 재료를 물에 개어 삭삭삭 저어가며 팩을 만드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차갑습니다.”
한마디가 끝나기가 무섭게 '똑'하고 귀 위쪽 머리카락으로 먼가 흘러내렸다. 아뿔싸, 묻었다. 좀 짜증이 나려고 한다. 피부관리사는 실수를 확인했는지 휴지로 그 부분을 덮었다. 뭐지? 마르면 닦으려고 그러나?
10분 정도 지난 후 팩을 떼어내고 휴지로 감춰놨던 그 부분을 닦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이라 팩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다 굳었나 보다. 나름 조심스럽게 휴지로 머리카락을 잡고 한 올 한 올 떼어내는데 조금 아프다. 소심한 나는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참았다. 한참을 그렇게 닦아내더니 다 되었다고 한다.
서둘러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거울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카락에 하얀색 먼지 같은 것들이 애매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이 정도까지 기분이 나쁘진 않을 텐데. 왜 그 피부관리사는 실수를 해놓고 사과하지 않았던 것일까. 작은 실수라서? 잘 닦으면 되니까? 그분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가본 이 피부과의 10회권을 끊어놓고 현재 8회를 방문했다. 그뒤로 다른 피부관리사에게 한 번 더 팩이 머리카락에 떨어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팩이 워낙 묽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실수 같았다. 하지만 두 분 다 나에게 실수를 사과하지 않았다. 한번일 땐 기분이 나빴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같은 일이 두 번 반복되니 이 피부과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만 친절하게 하면 뭐 하나 실수해도 사과는 안 하는데. 피부과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사건이었다.
작은 점 하나 빼는 건 쉽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근깨나 제멋대로 난 얼룩덜룩 기미는 빼기 어려운 법이다. 이번 팩 사건은 작은 점이 주근깨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실수를 해도 사과만 했다면 이런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이런 작은 실수들은 집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특히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하는 나는, 아이들의 작은 실수를 매번 발견한다.
“엄마! 오빠가 나 또 쳤어요!”
“엄마! 내가 안 했어요!”
첫째는 지나가다가 둘째 어깨를 쳤다. 하지만 일부러 한 것이 아니고 작은 실수이기에 사과를 하지 않고 안 했다고 우긴다. 진짜로 친 기억이 없어서 안 했다고 하는 것도 같다. 예민한 둘째는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사과를 하라고 강요하다가 서로 싸운다. 결국 중재에 나선다. 내가 일부러 한 게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살다 보면 작은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할 땐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들. 하지만 상대방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다. 실수는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작은 실수에 사과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실수가 너무 작기에 또는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실수를 인정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하기 싫을 수도 있다. 사과하지 않는이유는 다양하다. 피부관리사들만 봐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만 봐도 그렇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실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냥 지나가버린 상황은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러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바로 사과했겠지. 남에게 피해 입히는걸 극도로 싫어해서 부탁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심형이니까. 그래도 만에 하나 나도 모르는 그런 일이 있다면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