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버럭 화를 낸다. 감정 조절이 안 된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가 화산폭발처럼 예고도 없이 터져버렸다. 별것도 아닌 일에 한참 짜증을 부리며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러나 싶다. 달력을 본다. 생리 시작하기 일주일 전이다. 어쩜 시간은 이리도 잘 가는지. 내 몸은 생리할 시기가 왔다고 일주일 전부터 신호를 보낸다.
<생리전증후군> 여성이 월경이 시작되기 전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증후군. 배와 머리가 아프고 유방통도 느껴지며 몸이 퉁퉁 붓는 따위의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긴장되고 불안, 초조, 불면증 따위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가임기 여성의 약 75%가 적어도 한 번씩은 경험하고 이 가운데 5∼10%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학창 시절에는 생리전증후군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생리통이 심해서 한 달에 하루 이틀은 약을 먹고 배에 찜질을 하며 자는 게 일상이었다. 생리통이 심해진 건 고등학생 전후. 스트레스위염과 같이 온 생리통은 나를 참으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엄마는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생리통도 사라진다며 별거 아니란 듯이 말을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애를 낳아도 생리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검색을 해본다. 내 몸의 변화들이 생리전증후군을 가리키고 있다. 여성의 75%가 경험한다고 하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 걸까. 생리전증후군의 원인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저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기면서 여러 증상들이 생기는 것이고, 배란기전후 우울증과 관련된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우울감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특히 생리 전에 맵고 단음식이 당긴다.
사진출처 : 내몸사랑한의원 블로그
맵찔이인 내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면서까지 매운 것을 먹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뇌에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라고. 나의 최애 바닐라라테는 매일 먹어줘야 한다. 초콜릿은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달콤한 초콜릿을 하나 입에 넣는다. 우울감에 좋은 히비스커스차와 함께 먹는 초콜릿은 나를 조금 편안하게 해 준다.
하지만 자극적인 음식들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의 예민함을 줄여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러나 특별한 음식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평소에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줄이란 말밖에. 또한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고 한다. 말 안 듣는 초등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가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까? 내 맘 편하자고 모든 걸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없고, 하나하나 다 신경 쓰자니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나의 위장과 자궁에 미안할 뿐이다.
한 달에 열흘, 일 년이면 120일, 인생의 1/3을 예민함, 스트레스와 함께 통증 속에서 살고 있으니 진짜 너무 피곤한 인생이다. 여성의 75%는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이런 힘든 나날들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나를 여자로 태어나게 해 준 부모를 탓해야 하는 것인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것인가. 누굴 탓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이 억울하기만 하다.
결국 이 반복된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엄마라는 직업을 관둬야 하는데 이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잖아. 핏줄을 끊어 낸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아무리 말 안 듣는 미운 자식일지언정 그래도 내가 낳은 내 새끼다. 내 아이를 포기할 순 없다.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내 분신 같은 존재,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밉다. 말을 안 들어도 지지리도 안 듣는다.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 두 배로 힘들다.
육아선배들은 또 그러겠지.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아이가 어릴 땐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를 밤낮없이 케어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전쟁선포를 하는 듯했다. 어릴 때 힘들었던 기억이 다 지워져서 저런 소리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초등생엄마가 되고 보니 이제야 그 말이 이해가 된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어리고 부모를 잘 따를 때가 가장 예쁠 때라는 것. 그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지금의 몇 배가 힘들 것이라는 것. 점점 더 아이를 키우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그 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렇게 감정변화가 오락가락하는데, 이런 감정을 잘 조절하며 앞으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부모와의 애착형성이 중요한 이 시점.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원래 예민한 성격인데 생리전증후군까지 더해져 한 달에 열흘은 더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니까.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퍼붓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엄마 지금 생리전증후군 때문에 예민하다고,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파서 힘들다고, 아프니까 조용히 해 달라고. 아이들에게 이해를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해할리 만무하다.
아이들은 매달 아프고 예민하다고 짜증 부리는 엄마가 왜 저럴까 싶을 거다. 이 글을 쓰며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조금 불쌍하다. 그저 해맑게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는 것뿐인데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니 얼마나 황당할까. 집에서 가장 편하게 쉬어야 하는데 예민한 엄마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또 미안해진다. 이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되뇌며 생각한다. 아이의 사춘기, 중년의 갱년기처럼 호르몬의 장난질인 거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건 에스트로겐의 잘못이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그만. 엔도르핀으로 에스트로겐을 혼내 주자. 엔도르핀을 만드는 운동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