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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an 25. 2023

시댁 방문을 빙자한 가족 여행

경주 엑스포공원 방문기

결혼 전엔 한 번도 부산에 가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경기도 사람이 부산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여, 매 명절마다 부산에 가게 됐다. 그러나 임신했다는 이유로,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코로나 때문에 결혼생활 10년이 넘도록 10번밖에 가질 못했다.


명절에 며느리가 시댁에 방문하는 것은 정형화된 사실인데, 나는 며느리가 돼서 시댁에 가지 못했으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크다. 못 간 이유는 다양하고 합리화된 사실이며 어머니께서 먼저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제안하신 것이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만에 가는 시댁인가. 계획형인 나는 2주일 전부터 눈알을 굴리고 서치(search)를 해가며 준비를 한다. 시어머니 선물에 먹을 간식, 입고 갈 옷까지 빠짐없이 챙겨본다. 이제 아이들이 컸으니 각자 본인 짐을 싸게 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은 엄마 몫이다.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상황이 염려되어 명절연휴 전날 출발을 했다. 느긋하게 출발해도 될 텐데 차가 밀릴까 노심초사하며 아침부터 서두른다. 집에서 시댁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4시간 30분. 휴게소라도 들르면 기본 6시간은 걸린다. 그러기에 교통체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코로나에 아직 걸리지 않은 나는 휴게소에서 밥 먹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11시 30분도 되기 전에 휴게소에 들러 아이들이 고른 소떡소떡, 떡볶이, 닭꼬치, 호두과자를 사들고 차에서 허겁지겁 점심을 때웠다.


9시에 출발했는데 3시가 채 되지 않아 도착할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서두르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어차피 집에 가도 아무도 안 계실 텐데 일찍 가면 뭐 하나 싶다.


“우리 부산에 자주 오기도 힘든데 온 김에 어디 잠깐 들릴까? 해운대도 좋고, 날 추우니까 박물관도 좋고. 아니면 부산 가는 길에 경주 들릴까? 경주에 박물관도 많고, 경주 황리단길에 맛있는 것도 많대. 들려서 간식 사 먹을까? 점심도 대충 먹었잖아.”

“아니! 그냥 집에 빨리 가자!!”


세 사람이 반대를 한다. 왜? 피곤해서? 그렇다고 집에 가서 잠을 잘 것도 아닌데. 모처럼 만의 여행이니 잠깐 들리자는데 극구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방학 동안 어디 가지도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큰맘 먹고 추억하나 쌓아주려는데 왜 반대를 하는 거야.


“싫으면 됐어. 일부러 생각해서 얘기한 건데. 어디 가면 돈이나 쓰지. 나는 뭐 가고 싶어서 그런지 알아? 됐어. 가지 말자.”

안 그래도 피곤한데, 생각해서 한 말에 독이 돼서 날아오는 대답이 짜증이 난다.


“엄마 화났다. 그냥 가자.”

“엄마 그냥 가요.”

청개구리 같은 녀석들. 이미 화가 났는데 다시 가자는 건 뭐야.      




억지로 간 곳은 경주에 있는 엑스포공원. 넓디넓은 공원에 다양한 건물들이 간간이 서 있었다. 날이 화창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 그곳은 꽃과 나무가 생기 있게 푸릇푸릇 해질 무렵 한번 더 오고 싶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뻥 뚫린 공원에 부는 세찬 바람 뜻한 햇살이 더해져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첫 번째 건물에 들어서니 지도를 주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신다. 살롱헤리티지라는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입장한 곳은 상상동물원. 벽면 가득 상상 동물들이 날아다닌다.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상상 동물 그림과 색칠도구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다. 보자마자 그림을 고르고 색칠을 한다. 그것도 아주 꼼꼼히. 평일에 가서 그런지 색칠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다음 코스도 많은데 여기서 10분이 넘도록 색칠을 한다.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빨리 가자고 재촉해도 ‘조금만’을 외친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긴 아이들은 결국 반만 색칠하고 스캔을 해본다. 직접 색칠한 그림이 10초가 지나자 벽면에 날아다닌다. 신기하다며 계속하고 싶다는 아이들을 잘 달래서 다음 코스로 향한다. 영상관람과 미러의 터널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후다닥 스캔하듯 구경하고 다음 건물로 향했다.


천마의 궁전엔 첨성대, 천마총 금관, 석굴암, 성덕대왕 신종 무빙 라이트쇼등 이어지는 전시들이 내내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다양한 빛으로 3D입체감을 주는 멋진 광경에 아이들은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닌다. 다른 아이들도 해맑게 웃으며 빛을 쫓아 깡충깡충 뛴다. 집이었으면 진작에 뛰지 말라고 소리쳤을 텐데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미소가 번진다.


지도의 길안내에 따라 화랑아놀자&우리놀이터로 들어갔다. 실내놀이터도 있고 책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제법 괜찮아 보인다. 이미 초등생이 된 아이들은 놀 거리가 별로 없다. 길을 잘 못 들었는지 그 옆 건물에 가고 싶었는데 길이 막혀서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래도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찾아다닌다. 짜증 부리지 않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길을 헤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저 멀리 보이는 경주타워로 향했다. 가는 길목 중간에 매점이 있어 간단하게 음료수를 사 마셨다. 목이 마르다는 아이들을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속뚜껑에 겉뚜껑까지 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도 굳이 뽀로로 음료수를 선택하는 등생들은 그저 좋다고 실실거린다.


82m 전망대가 있는 경주타워 입구에는 태풍 같은 강풍이 불었다. 날아갈듯한 바람세기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라며 춥다는 아이들을 재촉하여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니 따스함도 잠시, 안내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전망대에 도착했다. 안내원의 손짓에 따라 의자에 앉아 영상을 보려는데 금세 스크린이 올라가더니 바깥풍경이 보였다. 1300년 전 신라를 재현한 영상이라고 하는데 상영시간을 잘 못 맞춰서 보지도 못하고 영상이 끝나버렸다. 한번 더 보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한다. 아래층에는 카페가 있었는데 이미 음료수를 사 마신 터라 가지 않고 바로 내려왔다.


경주타워 앞에서 by라미

바람과 씨름을 하며 지도를 보고 걷는데 길을 잘못 들어 다음 목적지에 가질 못했다. 아이들은 춥다고 그냥 집에 가자고 성화다. 결국 다른 건물이 아닌 주차장으로 향했다. 반밖에 보지 못했는데 이미 2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쉬지도 않고 돌아다녔으니 지칠 만도 하다.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에 그냥 가기가 너무 아쉬웠다. 온 김에 다 구경하고 싶었으나 바람도 많이 불고 지체 시간이 없었다. 경주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1시간 넘게 걸린다. 연휴 전날이라 5시만 돼도 차가 막히므로 서둘러야 했다.


“재미있었지?”

“엄마가 어디 가자고 하면 진짜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면 또 엄청 재미있어.”

“맞아 맞아. 엄마 말은 듣기가 싫은데 가면 또 좋아.”


이거 칭찬인 건가? 좋았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하다니. 그냥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한마디 더 해주고 좋았으면 됐다 말을 마무리했다.    



 

시댁에는 6시가 다 돼서 도착했다. 시어머니는 늦게 오는 아들내외가 걱정이셨나 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하는데 시어머니가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장장 9시간 동안 바깥활동을 한 우리는 피곤에 절어 있었다.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한 우리는 외출을 해도 4~5시간이면 집에 돌아오는데 하루 종일 바깥에 있었으니 지칠 만도 하다.      


3년 만에 간 시댁에서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가 3박 4일 연휴를 다 보내고, 설날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새벽시간에도 시끌벅적 떠들어 대다가 출발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운전하는 남편의 졸음을 날려 보내기 위해 옆자리에 앉은 나는,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쓸데없는 소리를 계속 재잘거렸다. 아침식사도 거르고 3시간을 내리 달려서 충북에 다 달았을 때 충주휴게소에 들러 아이들의 최애 소떡소떡과 사과빵을 사들고 5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명절에 시댁에 가서 특별히 한 게 없다. 3년 만에 간 시댁인데 매년 갔던 것처럼 편하게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온 것 같은 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 아이들 좋으라고 경주여행 가서 추억 쌓고 온 것 같다. 비루한 몸뚱이는 그저 피곤하기만 하다.


그래도 아마 다들 좋았을 거다. 아이들은 할머니댁 가면서 경주여행도 하고, 3일 내내 TV 보며 놀았으니 즐거웠겠지. 오며 가며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소떡소떡을 두 번이나 먹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시어머니는 3년 만에 만난 아들내외와 손주들이 반가웠을 테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조차 행복하셨겠지. 며느리가 바리바리 싸들고 간 화장품과 간식 등 선물 뜯어보는 재미도 있으셨겠지. 손녀의 큐브가르침에 웃음이 절로 나셨을 거다.

남편도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가 반가웠을 거고.

난 특별히 한건 없지만 그래도 먼 거리 간다고 일찌감치 이것저것 준비하여 싸들고 가는 수고를 했고, 우리 가족 타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을 보여드렸으니 그보다 더 큰 선물이 또 있을까. 

명절에 시댁 방문을 빙자한 가족여행이었지만 그조차도 서로가 행복했으니 됐다.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는 명절. 이것이야말로 누구나 원하는 명절이 아닐까.


사진출처:my beautiful world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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