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처럼 오늘도 같은 일상이다. 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한다. 계획인 듯 습관인 듯 항상 하는 그 일과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몸단장을 한 뒤에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커피 한잔을 타서 식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한글문서의 하얀 바탕에 검정 커서(cursor)는 여전히 깜빡이고만 있다. 뭐라도 적어달라고 재촉하듯이. 내 머릿속은 텅텅 비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아무 생각이 없다. 오늘은 또 무얼 쓰지.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왜 생각이 안 날까. 아이를 둘이나 낳았더니 기억력감퇴가 왔나 보다. 어릴 적 엄마가 했던 ‘깜박깜박’을 내가 하고 있구나. 내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다. 몇 장 안 남은 사진이라도 봐야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학창 시절엔 대체 무얼 했나.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추억조차 없었는지 잘 모르겠다. 딱히 꿈도 목표도 없었고, 학군지도 아니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여행 한번 제대로 다녀본 적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집의 맏딸인 나는 성적도 별로인데 굳이 돈을 들여 아무 생각 없이 지방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졸업 후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했다. 취직을 준비할 땐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잘하는 일도 없는데 취직은 과연 할 수 있을까. 한번 취직하면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니 여자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세무회계사 사무실이었다. 배워두면 쓸모 있겠다 싶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일할 수 있는 조건이 괜찮다고 들었다. 그 시절 월 50만 원을 받으며 영수증을 붙이고 전화받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했다.
일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간 대학에 들어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시작했다.야간 대학 졸업 후에는 사이버 대학에 편입을 했다. 다행히 새로 옮긴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었고, 3학기 만에 장학금혜택을 받으며 졸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졸업장이었지만 나 스스로 기특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바쁜 와중에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도 했고 결혼도 했다. 연애를 오래 했기에 당연히 결혼하는 줄 알았고, 결혼했으니 아이를 낳는 것도 당연했다. 직장에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아이 낳는 시기까지 계획하며 임신계획을 세웠지만 내 뜻처럼 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될 대로 돼라 생각했더니 임신이 되었다. 임신과 함께 찾아온 입덧 때문에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끝이 났다.
임신기간 10달 중에 7달 정도는 입덧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남은 3개월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뱃속 아이가 주는 특별보상이라고 포장하려 애썼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진통이 온 뒤 약 3시간 만에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일상이 시작되었다. 밥 먹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그냥 그렇게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뇌에 깜빡이 커서(cursor)가 켜졌나 보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20대, 30대. 시간이 흐르면서 앞의 기억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특별한 경험이나 기억이 없어서 그런 걸까. 평범한 기억들은 사라져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인가. 뇌가 나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삭제해 버렸다. 분명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도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았을 텐데. 뇌가 원망스럽다. 이미 지워져 버린 추억들을 아쉬워하며 기억을 탓할게 아니라 앞으로 특별한 기억을 채워 넣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맞는 거겠지. 다행히 23년 새해가 오기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앞으로 열심히 글을 쓰며 특별한 기억을 채워 보기로 다짐한다. 오늘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