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23년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다. 그러나 특별할 것은 없다. 쥐 죽은 듯이 떠오른 23년의 새해는 22년 12월 31일 어제처럼 똑같이 눈이 부셨다. 그냥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똑같은 일상이다. 매일매일 집안일로, 아이들 뒷바라지로 정신이 없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1월은 항상 겨울방학으로 아이들 챙기느라 여력이 없다. 겨울방학 동안 집에만 있을 순 없으므로 어떤 학원을 보낼지 미리 고민하고 계획해 본다.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있지만 방학 아니면 배우지 못할 것들을 가르쳐보기 위함도 크다. 그동안 집 주변에 제대로 된 상가 하나 없어서 학원 보내기가 애매했다. 늘 안전과 시간을 중요시하는 터라 학원차를 이용하는 것에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작년 초부터 10층짜리 건물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 주변에 학원이 넘쳐난다. 요리조리 학원을 비교하여 적당한 학원을 골랐다.
겨울방학을 시작한 지금, 올해 6학년이 된 아들은 농구학원, 수학학원, 미술학원에 다니고, 3학년 딸은 피아노학원, 발레학원, 미술학원에 다닌다. 3월이 되면 학교수업시간표에 맞춰 스케줄을 다시 짜야하지만 우선 겨울방학이 2 달이므로 방학스케줄에 맞게 계획을 짰다. 그동안은 주변에 걸어서 갈 학원이 없었기 때문에 학원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서 충분히 케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학원비로 학원 전기세를 대신 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학원이 넘쳐나면서 동시에 내 귀도 팔랑거렸다. 지금이라도 예체능 학원에 보내겠다는 심산이다. 솔직히 예체능의 '예'자도 모르는 내가 그동안 예체능까지 가르친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던가. 그것도 아이가 어렸으니 할만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래도 딸아이가 6살이 됐을 무렵 피아노를바이엘과체르니 100까지 직접 가르쳤을 땐, 나 스스로 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체르니 100은 완벽하지 않아서 중간에 학원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지만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내가 교재만 가지고 가르쳤는데 아이가 잘 따라왔다. 100에 90은 아이의 소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르니 30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피아노가 어렵다며 점점 하기 싫다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첫째 아이는 초1 때 차량을 이용하여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차량을 썩 내키지 않아 한 내가 아이를 학원차량에 태워 피아노학원에 보내게 된 이유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 앞 학교가 개교를 안 했기 때문이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초1 아이를 매번 등하교시켜주었더니 너무 번거로워서 하교만큼은 학원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 학교 앞에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피아노학원이 있어서 보내게 되었는데 1년 만에 집 앞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잠시 피아노 과외를 받았지만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유로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조차 그만두게 되었고, 첫째 아이는 결국 피아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이후로 피아노를 더 배워보지 않겠냐고 채근했지만 지금껏 수락하지 않는 아들이 조금은 원망스럽다. 어릴 적 예체능 학원에 다니지 못한 게 한이었을까. 피아노, 미술, 운동은 꼭 가르치고 싶었는데 맘처럼 쉽게 되지가 않으니 나도 모르게 속상한 마음이 커진다.
아들이 5살이 됐을 무렵, 집 근처에 태권도장이 생겨서 처음 학원이라는 곳에 보내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가 있었던 터라 좀 쉬고 싶은 마음과 운동을 배우게 하려는 마음에. 하지만 아이는 시끄러운 도장 분위기에 거부를 하였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뒤로 아이는 태권도장을 싫어하게 되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태권도장은 가기 싫다고 한다. 운동은 하나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차량등원도 마다하지 않고 태권도 아닌 다른 학원을 좀 알아봤지만 아이는 합기도, 검도, 주짓수 그 어느 것 하나 좋다고 하지 않는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괜히 미안해진다.
겨울방학에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급하게 결정한 곳이 농구학원이다. 남편은 무슨 농구를 학원 가서 배우냐고 하지만 요즘 세상에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학원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농구도 스포츠인데 학원 가서 제대로 배워야 하고. 이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혼자 운동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다행히 방과 후수업에서 농구수업을 들었던 터라 나름 익숙하게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칭찬도 받았다며 반달눈을 하며 으스댄다. 안경을 쓰고 있는 아이라 안전이 제일 걱정이다.
나와 함께 하며 생긴 잘못된 공부습관과 나쁜 수학정서로 인해 수학학원을 보낸 지 6개월이 지났다. 학원에서는 매월 학습 평가서를 보내준다.
12월에도 지난달 좋아진 학습 습관을 잘 유지하며 착실하게 학습을 잘했습니다. 과정을 적으며 문제를 푸는 것이나,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보며 끈기 있게 스스로 풀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가장 좋아졌습니다.
수학공부를 하면서 제일 우려했던 부분이다. 문제를 한번 쓱 읽어보고는 어려운 것 같으면 문제를 풀지 않고 모른다고 우긴다. 모른다고 놔두는 것은 문제를 풀지 않은 것이니 몰라도 여러 번 생각해보고 풀어봐야 한다고, 틀려도 괜찮다고 여러 번 강조해 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엄마의 입김이 통하나 보다. 학원선생님도 자주 이야기해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점점 수학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이제 6-1 기본서, 개념유형서를 마무리하고 6-1 한 권 더 푼다고 하는데. 응용을 하게 될까, 최상위 s를 하게 될까? 최상위는 아무래도 무리겠지? 또다시 엄마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워 워. 내려놓기를 할 때다.
둘째 아이는 태권도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첫째가 다녀보지 못한 태권도장. 태권도에 왜 다니고 싶냐고 물으니 친구들이 많고, 재미있어 보인다고 한다. 어차피 운동 하나 시킬 생각이었기에 태권도장의 상담을 마친 상태에서 남편에게 보고를 했다. 하지만 남편은 결사반대. 태권도장은 과격한 남자애들이 많아 위험하단다. 딸바보 아빠의 위엄을 여실히 드러내는 순간이다. 고민 끝에 다른 학원을 알아보니 얼마 전 발레학원이 오픈을 한 게 아닌가. 아이를 잘 구슬려 발레학원에 함께 가보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핑크색 발레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더니 발레학원에 다녀보고 싶다고 한다. 상담 가서 바로 등록을 하고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은 너무나 좋아했다. 지금 발레학원을 다닌 지 4개월 정도 됐다. 어린아이가 원래 이렇게 뻣뻣한가 싶을 정도로 유연성 제로였던 둘째 아이는 약 3개월이 지날 무렵 160도 정도의 다리 찢기가 가능해졌다. 잘한다고 칭찬하니 수시로 다리를 찢는다. 귀여운 행동에 미소가 번진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미술이야말로 모든 영역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한번 배워두면 쓸모가 많겠다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배워볼까 싶지만 나보단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더 낫겠다 싶은 엄마 마음이 앞선다. 작년부터 방학특강을 들어볼까 고민만 하다가 더 이상은 늦추면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등록을 했다. 그리기보다는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리기 스킬도 배워야 잘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싫다는 아이를 반강제로 등록시켰다. 겨울방학에만 한번 배워보자는 말과 함께 재미있으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자고. 미술학원 첫 등원 날, 두 아이는 그러데이션을 배웠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에는 엉망진창 물감이 칠해져 있었다. 역시 미술은 배워야 해. 처음치고는 잘했는걸, 앞으로 배우면 더 잘할 수 있어. 용기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재미있다고 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며 시끌벅적 후기를 남긴다.
3월이 되어도 이 학원들은 꾸준히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3학년, 6학년이 되는 아이들의 스케줄이 될까 싶다. 특히 큰아이. 예체능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고학년이 되었으니 너무 시간이 없다. 진즉에 가르쳤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몰려온다. 중학생 되면 진짜 시간이 없으니 마지막 초등 1년을 알차게 가르쳐보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