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서류를 찾다가 발견한 이것. MBTI 결과지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테스트 한 날이 족히 15년은 된 듯하다. 그땐 그냥 하라니까 하고 대충 넘겼던 것 같은데, 최근에 MBTI 열풍이 불고 나서야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
우선 아이들부터 MBTI 테스트를 해보자. 그런데 아이들이 어려 테스트를 할 수가 없다. 그냥 내 기준으로 해당되는 항목을 선택해 본다. 첫째는 초등생이니 대충 짐작이 간다. 선택하는 것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결과는 E.N.F.P 나랑 완전 정반대다. 15년 전의 내 유형은 ISTJ다. 아무리 오래전에 테스트했다고 해도 그 성향이 어디 가겠는가. 지금껏 아이와 함께 10년 남짓 살아오면서 나와는 다른 생명체라고 여기고 살아오긴 했지만 MBTI 유형이 정확하게 답을 알려주니 참으로 새삼스럽다. 너와 네 아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달라도 너무 다르니 힘든 게 당연한 거라고 MBTI가 나를 위로해 준다. MBTI가 정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참고하면 아이를 바라보는 데에 조금은 위안이 될 듯싶다.
<ENFP 자녀 특징> 놀기를 매우 매우 좋아한다. 공부에 관심이 많을 경우에는 전교 1등 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관심이 없을 경우에는 죽어도 안 한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긴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착하여 주변에 친구가 많다.
<ISTJ 부모 특징> 근면, 성실, 열렬한 노력파적인 모습과 강한 책임감을 보이며 자녀들도 가급적이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면서 회사에서 승진을 잘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산다. 다만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한다. 자녀가 성격이 특이하거나, 게으르거나, 너무 놀기 좋아할 경우 이를 통제하려 든다. 자녀가 명문대학을 입학, 졸업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등 현실적인 목표를 이루었을 경우 겉으로는 표현을 잘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매우 뿌듯해한다. 때로는 자녀의 도덕적인 인격 발달보다 입시나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를 중시하기도 한다.
-자료출처 : 나무위키
진짜 똑같다. 내 아이는 놀기를 매우 좋아하며, 친구들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건 열심히 하지만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딱 그런 스타일이다. 엄마가 시키면 대답은 정말 잘한다. 그런데 딱 그뿐이다. 대답만 하고 실천은 안 한다. 하기 싫으니까 절대 안 한다. 목이 찢어져라 잔소리해도 안 한다. 몽둥이 들고 반 협박이라도 해야 하는 아이다.
나는 노력파이며 책임감을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내 아이도 그러길 바란다.
<자녀가 성격이 특이하거나, 게으르거나, 너무 놀이 좋아할 경우 이를 통제하려 든다.>
이게 문제이다. 내 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통제하려 해서 생기는 문제들. 성격이 특이하고, 게으르고, 놀이만 좋아한다고 느껴지는걸 어쩌란말인가. 어떻게 해야 정 반대 성향의 엄마와 아이가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사춘기가 오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형성이라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다분하니 한숨만 나온다.
나는 아이가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하나하나 꼭 필요한 습관을 잡아주려고 애쓴다. 그런데 아이는 하기 싫어한다. 답답할 노릇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정리를 하라고 한다. 이불 하나 개는 습관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다양한 매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난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정리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는 엄마다. 침대가 지저분하면 방이 지저분해 보이고, 방이 지저분해 보이면 내 마음도 정리가 안 되는 기분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으세요? 침대 정돈부터 똑바로 하세요. 매일 아침 침대 정돈을 한다면, 여러분은 그날의 첫 번째 과업을 완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작은 뿌듯함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과업을 수행할 용기를 줄 것입니다. 하루가 끝나면, 완수된 과업의 수가 하나에서 여럿으로 쌓여있을 것입니다. 침대를 정돈하는 사소한 일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여러분이 사소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큰일 역시 절대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윌리엄 맥레이븐 해군 제독 연설문 中
밥을 먹으면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한 세트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초등고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이 한 세트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욕실에 들어가서 양치, 세수, 로션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다 세팅해 두었는데 여전히 양치만 하고 나온다. ‘세수, 로션은?’ 이 얘기를 아침마다 반복하는 게 일상이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점퍼를 방바닥에 훌러덩 벗어 던져두고 나온다. 오줌보가 터지려고 하는 건지 참 급하기도 하다. 옷 걸어두라고 잔소리폭탄을 날려줘야 겨우 한다. 이미 참을 인이 세 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습관들. 이 외에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그런 사소한 일들을 왜 우리 아이는 하지 못하는 걸까.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검사라도 받아봐야 하는 것인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민이 된다.
동갑내기 아들이 있는 친한 언니가 있다. 자주 통화하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아이도 남자아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줄 때가 종종 있다. 내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언제까지 가르쳐야 하는 건가 하는 답답함이 내 심경을 어지럽게 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100번만 같은 일을 하면 그게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했는데, 내 아이는 10000번 넘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습관으로 자리 잡히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지금까지의 잔소리 폭탄이 아이에게 통제라고 느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제 사춘기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질 않길 바란다. 이러한 현상들은 당연한 것이고, 내 아이는 잘 크고 있으며 이런 사소한 생활습관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