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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Apr 10. 2023

벚꽃이 뭐길래(1)

서울대공원 여행기

일 년 중 딱 한 번만 볼 수 있는 봄꽃은 바로 벚꽃이다. 봄에만 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벚꽃은 한번 피면 금방 진다. 개나리나 진달래 같은 여느 봄꽃들과는 다르게 꽃잎이 너무 연약하다. 바람 한번 분다고 우수수 떨어지고, 비라도 내리면 길가에는 꽃잎들로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그래서 비 오기 전에는 무조건 벚꽃 구경을 가야 한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4월만 되면 벚꽃구경을 간다. 전국적으로 벚꽃 개화시기가 되면 벚꽃 축제를 하고 사람들은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다.


3월은 개학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으레 봄이 온다고 느끼지만, 사실상 꽃샘추위가 있기 때문에 아직 춥다. 개학과 동시에 화사한 봄옷을 꺼내 입다가도 꽃샘추위가 몰려들면 다시 경량패딩이나 얇은 스웨터를 꺼내 입는다. 그래서 봄이라고는 하지만 봄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4월은 돼야 부는 바람도 더 이상 싸늘하지 않다. 꽃들도 제법 피기 시작한다. 동네에 가장 많은 노란 개나리가 먼저 피기 시작하면 벚꽃도 꽃망울을 드러낸다. 따뜻하다고 느끼면 바로 벚꽃이 피어 우리를 반긴다. 그래서인지 3월보다는 4월이 더 봄 같다고 느껴진다.


정말 봄다운 봄이 왔다. 4월이 되었고, 벚꽃이 피었다. 우리 동네는 5년 전쯤에 만들어진 택지지구이기 때문에 나무들이 다 작다. 다른 동네는 이미 벚꽃이 만개했다고 하는데, 집 앞 도로변에 있는 벚꽃나무에는 얼마 안 되는 가지사이로 애매하게 자리를 잡은 꽃송이들뿐이다. 그조차도 바람이 불어 이미 거의 다 떨어졌기에 볼품이 없다. 아직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했나 보다. 언제쯤 벚꽃나무에 새하얀 벚꽃들이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개할까.


뉴스 및 신문기사뿐 아니라 SNS에도 벚꽃사진들 뿐이다. 하얀 꽃송이들이 올망졸망 피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눈꽃들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린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나도 모르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감탄을 하게 된다. 나도 눈꽃을 한번 맞아 보고 싶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정말일까?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떨어지는 벚꽃 잎을 한번 잡아보고 싶다. 그 정도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벚꽃 앞에서 가족사진도 꼭 찍어야지. 남는 건 사진밖에 없지 않은가. 추억은 결국 사진으로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이렇게 예쁜 벚꽃을 보러 가야겠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일이 생겨서 차일피일 미루다 비가 오는 바람에 결국 또 보지 못했다. 올해는 꼭 보고 말리라. 날씨를 검색한다. 이번 주 수요일에 비예보가 있다. 이번 주 주말이 마지막이다. 주말에 벚꽃 구경을 못 가면 올해도 풍성한 벚꽃은 보지 못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한다. 멀리 가면 힘드니까 가깝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가야겠다. 그래, 서울대공원. 가서 벚꽃도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도 보고 오면 되겠다. 미리 인터넷으로 입장권 예약을 하고 20% 할인을 받았다. 저렴한 가격에 부담 없이 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으리라. 뿌듯하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주말이 되길 기다렸다.


“얘들아, 이번 주 일요일에 서울 대공원 갈 거니까 미리미리 공부 다 끝내자. 알겠지?”

“네~ 앗싸, 신난다!”

아이들이 평일 공부를 다 하지 못하면 주말에 밀린 공부를 해야 한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무조건 벚꽃구경을 가야 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공부를 빨리 끝내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무리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웠어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모든 계획은 무산된다. 나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의 약속이기도 하기에 꼭 지켜야 한다. 평일공부만 제대로 끝내놓으면 별일 없이 외출을 할 수 있을 테다. 그저 하나만 생각했다. 아이들 공부, 그것만 끝내면 된다. 단지 아이들 공부만 끝내게 하려고, 며칠 전부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이들을 위한 주말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벚꽃나들이였다.     




첫째 아이가 금요일 낮부터 목이 좀 따끔거린다고 하더니 저녁에는 울상을 짓는다.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딱 보니 목감기 초기증세다. 아이를 10년 넘게 키워온 부모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아프면 꼭 엄마를 찾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의사인지 엄마인지 헷갈릴 정도다. 우선 집에 있는 기침감기약을 먹이고 내일 오전 병원에 가야 할 거 같다. 한 통에 시럽이 5ml씩 10포가 들어있는 상비약이었는데 아이가 6학년이 되니 2포 반을 먹어야 한다. 한 번에 3분의 1의 양을 먹어야 하니, 순간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다 큰 아이에게 스스로 복용량을 맞춰 먹게 했다.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이건 좀 편하다.


약을 먹고 자니 조금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목이 부어 열이 나는 것이므로 병원을 가야 했다. 9시에 ‘똑닥’이라는 앱에 접속을 했다. 로딩이 잘 되지 않는다. 5분 여시간이 지나 겨우 예약을 했다. 대기자는 69명. 9시 오픈인데 벌써 70여 명의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앱으로 예약을 할 수 있어 진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당 1분씩 잡으면 최소 1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아이에게는 못한 숙제를 하라고 하고 병원시간을 수시로 체크했다.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10시쯤 나가려고 했던 계획은 점점 미뤄지고, 결국 11시가 넘어서 출발을 해서 진료를 받고 약을 지어왔다.


환절기라 그런지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학교에서 옮아 온 건지,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조금 화가 난다. 평상시에 아프지 말라고 유산균, 비타민에 이것저것 챙겨주고, 아침과 낮 기온차가 크니 등교할 때는 항상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얘기하는데도 아이는 제멋대로다. 엄마 말 듣지 않고 얇은 옷을 꺼내 입고 가서 그런 건 아닐까, 덥다고 찬물을 벌컥벌컥 마셔서 그런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원인을 따지면 무엇하랴. 이미 아이는 감기에 걸렸고, 약 먹고 괜찮아졌다고 한다. 하루밖에 안 됐는데 진짜 괜찮아진 건지, 놀러 가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 기침도 안 하고 열도 안 나니 좋아진 것은 확실하다. 이번 주말에 벚꽃나들이를 가도 괜찮은 걸까? 다음 주로 미루면 벚꽃이 다 떨어져 버릴 것 같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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