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수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사춘기 아이 공부의 첫걸음은 '관계 맺기'다.
아무리 좋아하는 걸 보상으로 내걸어도, 맛있는 걸 먹여도 아이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 먹고는 시치미를 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나서 결국 소리를 지르며 등짝 스매싱을 날려보지만 변화는 없다.
내 목만 아프고, 내 손만 아프다.
초5부터 중2 지금까지 안 해본 게 없다.
하루 이틀 말 듣는 듯하다가도 다시 제자리.
아무리 잘해줘도 효과는 잠시, 한 달에 손꼽을 정도로 평온한 날이 드물다.
생리 전 증후군까지 겹치는 주엔, 모든 것이 최악이 된다.
"내가 왜 결혼해서 애를 낳아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행복하려고 만든 가정인데, 정작 그 행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래도 아이를 사랑하기에, 또 유튜브를 뒤지며 해답을 찾아본다.
그런데 다 아는 얘기다.
머리로는 알지만, 아이만 보면 화부터 치솟는다.
그러다 4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문제의 시작은 내 '기대'였다.
나보다는 잘되길 바라는 마음,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돈 걱정 없이 살길 바라는 마음.
너무 당연한 '엄마의 마음'이 우리 둘을 힘들게 한 것이다.
드라마 '나쁜 엄마'의 1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엄마는 아이의 식사까지 통제하고, 밥을 먹을 때도 공부를 시켜서 결국 아이는 검사가 됐지만,
엄마를 증오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런 결과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 모든 건, '엄마의 기대와 욕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걸 내려놓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냥 두면 생활 습관부터 거슬리고, 저런 태도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된다.
이 걱정과 불안이 나를 자꾸 잔소리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생각해 보자. 누구에게나 어릴 적 기억은 다 다르다.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든, 맞벌이 부모 덕분에 비교적 자유롭게 컸든, 지금 우리는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있다.
양치질을 안 한다고 잔소리를 안 들었다고 해서 지금도 양치를 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게다가 치아가 튼튼하게 타고났다면, 하루 한 번만 해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매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하지만
생각해 보면 성인인 우리조차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계획을 완벽히 지키며 살아가는 건 아니다.
미성숙한 아이가 꾸준히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미성숙한 외계인이다."
사고가 미성숙하니 사리분별도 어렵고, 대화도 잘 안 통한다.
그런데 그런 외계인에게 화를 내봐야 뭐가 바뀔까?
그래서 첫 단계는 '내려놓기'다.
공부 안 하고 양치 안 했다고 화가 나면, 아직 내려놓지 못한 거다.
(많은 엄마들이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화를 내고 있다)
내려놓고 나면 두 번째 단계, 관계 맺기가 가능해진다.
싫어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옳아도 듣기 싫다.
회사에서 싫은 동료가 계속 옆에서 잔소리한다고 상상해 보라.
아이도 똑같다. 내려놓는 순간 잔소리가 줄고, 아이 마음이 천천히 가까워진다.
관계가 맺어졌다면 이제 교육을 하면 된다.
양치를 가르치고 싶다면, 그냥 말하면 된다. 때로는 농담처럼.
"양치하고 나면 나는 네 치약 냄새가 그렇게 좋더라."
공부를 시킬 땐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연결한다.
그리고 복습부터 시킨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에겐 복습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미 아는 문제를 푸는 건 부담이 적다.
무조건 양도 최소화한다.
어쩌면 시험이 끝나서 안 해도 되고, 다 알아서 안 해도 된다고 아이는 큰소리칠 수도 있다.
관계가 아직 덜 맺어졌거나 사춘기의 반항일 수 있다.
나는 가끔 반항하는 사춘기아이를 '아가'라고 부른다.
어린아이는 원래 서툴다. 그러나 다 큰 아이가 서툴면 화가 나는 법이다.
서툴러서 귀여웠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며 아가라고 부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시선이 따뜻해져서 확실히 화를 덜 내게 된다.
나는 최근 두 달여 동안 안 하던 공부를 시키기 위해
'8시까지 끝내면 9시까지 게임 가능'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아이는 첫날 8시에 끝냈고, 둘째 날 7시 반, 셋째 날엔 6시 반에 공부를 마쳤다.
그 시간만큼 게임을 실컷 했다. 공부를 더 시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처음 정해놓은 양을 중간에 늘리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공부방식을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가 이어폰 꽂고 가요 들으며 공부하겠다고 했을 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완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10분에 한 번씩 계속 나와서 짜증만 부리길래 허락했더니, 오히려 정답률이 높아졌다.
서술형 문제는 단답으로 쓰거나 모른다고 안 푸는 일이 생겼지만,
서술형 문제 풀 때만 노래 끄고 해 보자고 부드럽게 말하니 순순히 수긍했다.
지금은 아직 현재진행 중이다.
나조차도 아이와의 관계회복이 얼마 되지 않아 단언하긴 어렵다.
사춘기 아이의 뇌는 여전히 미성숙하지만 내 마음이 편해지니 아이도 조금씩 편안해지고,
확실히 말도 더 잘 듣는다.
마지막으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된 팁 하나를 주자면, 챗GPT에게 아이의 사주를 물어보라.
돈이 걱정되면 재물운을 묻고, 사람관계가 걱정이면 인복을 물어라.
또 아이의 미래에 대해 진로를 물으면 놀랍도록 친절하게 답해준다.
나에게 챗GPT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기다려주면, 아이는 스스로 잘 해낼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같은 질문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잊지 말자.
관계가 먼저다. 그다음이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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