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오르세 미술관만 세 번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반 고흐 특별 전시 중인 것을 보니 19년 겨울이 떠올랐다.
그 해 겨울, 반 고흐를 좋아하는 U와 나는 오직 반 고흐만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로부터 일 년 전 18년 겨울, 졸업여행으로 갔던 유럽에서 고흐의 그림을 충분히 감상하고 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반 고흐 여행 일정은 단순했다. 고흐의 고향 네덜란드와 고흐가 예술의 꽃을 피우고 일생을 마무리한 프랑스, 두 국가만 방문해서 고흐의 그림을 질리도록 감상하고 오기. 여행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게트와 크루아상으로 세끼를 해결하며, 하루 종일 걷고, 그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약 4년 만에 다시 방문한 오르세 미술관이다. 4년 전, 네덜란드 반 고흐 뮤지엄에서 보았던 그림을 오르세 미술관에서 또 볼 수 있어 기대가 되었다.
전시는 훌륭했다. 반 고흐 특별 전시도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그림으로 가득한 상설 전시도, 모두 훌륭했다. 아무렴, 오르세 미술관인데.
그러나 전시의 탁월함은 나와 아무 관계 없었다. 그곳에서 난 억지로 작품들과 눈을 맞추었다. 결코 자연스럽지도, 내키지도 않았던 눈맞춤의 연속이었다.
내게도 반 고흐의 그림을 마주하고 울먹이던 순간이 있었다. 그림 앞에 쪼그리고 앉아, 몇 십 분 넘도록 한 그림만 감상하던 시간도 있었다. 특히 고흐가 죽기 바로 직전에 그렸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그림들은 색깔과 붓터치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살았다. 분명 그토록 나와 동일시하기까지 했던, 그토록 아꼈던 그림들 앞에 있는데, 이 그림들을 다시 보려고 왔는데, 나는 왜 이리 건조한 건지. 건조하다 못해 메마른 것 같은 '지금'이 낯설기만 하다.
사람들이 세 겹씩 그림을 둘러싸고 있다. 인파 사이로 요리조리 움직이며, 이대로 미술관을 나가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정말 이대로 나가 버리면 내가 몹시 아꼈던, 그래서 간직하고자 몸부림쳤던 '어떠함'마저 놓고 나올 것만 같았다. 억지로나마 뭐라도 담아보려고 애썼다. 단 한 문장의 캡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엄격하게 통제된 삶을 선택했다(He adopted a strictly regulated life)'이 눈에 들어왔다. 그 캡션 한 줄에 이제는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은, 이제는 너무 희미해진 것 같은 '어떠함'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세 번째 방문한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는 그토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인정하지 않았던 '지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림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보는 내가 변했다는 것.
뜨겁던 열정과 애정이 식는 감각은, 어찌 매번 낯선 걸까. 낯설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무엇이, 얼마나, 왜 변했는지 곱씹어볼수록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 발자국이 무덤처럼 쌓여 있다. 나 이렇게까지 멀리 오려던 건 아니었는데, 내 보폭이 이렇게 컸던가. 이끈 건지, 이끌린 건지- 내 발로 걸은 건지, 아니면 무엇에 업혀 온 건지- '지금'을 밟고 있는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발자국이 무덤처럼 쌓여 있다.
그게 다 지구가 자전해서 때문이야. 아니면 밟고 있는 땅이 무빙 워크였던가.
분명 보았지만 기억에 남은 건 제목뿐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목을 누가 지었는지, 참 활용도가 참 높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 같다고, 아니, 어쩌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고. H와 나의 '지금'이 '그때'가 되면, 그때는 알 수 있을까.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을 거라는, 실체 없는 확신은 오르세 미술관을 나오며 흩어지고, 휘적휘적 미술관 앞만 거닐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이 하얗다. <퐁뇌프의 연인들>에서 말했던 그 하얀 하늘이 내가 바라보는 하얀 하늘의 빛깔이었을까.(영화 안 봄)
가려던 우동집은 브레이크 타임으로 문을 닫았다. 유일하게 문 연 일본 음식점에서 먹은 미소 라멘과 가츠동은 맛없었고, 라무네만 맛있었다.
아, 라무네. H와 나는 라무네 구슬이 유리병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 "깡!"을 좋아하곤 했다. 뽕따의 '소다'는 뿌연 하늘빛이고, 밀키스의 '소다'는 뿌연 하얀빛이며, 라무네는 '소다'는 맑고 투명한 소리다. '소다'라는 관념은 뽕따와 밀키스와 라무네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래.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게 있다. 발자국 무덤을 뚫어져라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