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대교 위에서 욕설 뱉어내기
욕은 대체로 나쁘다. 그런데 가끔씩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뭐 엄청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에 섞여 있는 무언가를 통째로 토해내고 싶은 느낌이랄까? 또 그렇다고 그 안에 심오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혼자 중얼거리며 욕을 하기도 하는데, 크게 외치기는 어렵다 보니 타격감은 조금 적다. 그렇다고 산에 가서 야호 대신 시발! 을 외치자니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기 딱 좋았다.
물론 남에게는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욕 그 자체로 누군가를 기분 상하게 한 적은 더욱이 없다. 웬만하면 애초에 악의 자체를 잘 가지려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혼자 별 의미 없이 몰래 연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악의를 가져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정녕 서울 안에 은밀하게 욕을 외칠 곳은 없는 것일까? 문득 며칠 전 출사로 한강에 갔다가 동작대교를 건넜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 위에서는 차들과 전철만 쌩쌩 지나다니고, 다리 아래에는 퍼런 한강 물만이 고요하게 흐르는 곳이었다. 며칠 후 친구 두 명과 욕 원정대를 꾸려 동작대교로 갔다. 동작역을 빠져나와 대교 위로 오르니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다리 중간으로 갈수록 바람은 더욱 세져 온 몸을 정신없이 두들겼다. 오랜만에 맞는 신선한 자극에 웃음이 절로 났다.
친구 한 명이 먼저 난간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욕을 툭하고 뱉었다. 그게 뭐라고 낄낄 웃음이 나왔다. 다음은 내가 난간에 섰다. 짙은 파랑의 한강물과 그보단 밝은 파랑의 하늘 그리고 노란 태양을 온몸에 머금으며 욕을 뱉어낼 준비를 했다. 마치 한 맺힌 귀신처럼 입 언저리에서만 맴돌던 욕설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비상하는 순간이었다.
“씨바알!”
속이 다 시원했다. 물론 뒤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시선에 머쓱하기도 했다. 숨겨 놓은 감정을 괜히 들킨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평소처럼 중얼거리며 욕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목소리 볼륨을 키웠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다양한 욕들이 몸속을 타고 터져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소리를 질러도 풍경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크게 욕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가끔은 여기 와서 욕도 좀 하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는 친구들이 미친 듯 웃어대고 있었다. 내 욕이 웃겼는지 내 행동이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시간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미 웃음으로 무장해제된 또 다른 친구는 숨을 한번 딱 고르고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미 그는 충분히 몰입되어 있었고, 뒤이어 격렬한 욕들을 뱉어댔다. 평소 무슨 울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욕은 꽤 고농도의 한이 서려 있었다. 물론 그도 나처럼 별일 없을지 모른다. 그저 평소에 정제되어 있던 언어를 부수는 상황에 폭 하고 몰입했을 수도 있다. 마치 물감을 쫙하고 뿌리며 추상화를 그릴 때처럼 말이다.
욕설을 마치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얼굴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욕은 나쁜 것인데 왜 웃음이 나는가! 나는 조커도 아닌데! 갑자기 친구 한 명이 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또 다른 친구가 그것을 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우리는 일종의 악의 없는 연극을 했다. 그럼에도 욕설은 대체로 나쁘다. 특히 상대를 비하하고 상처를 주는 욕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 말에는 악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욕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얼까? 다른 건 몰라도 친구들 얼굴에 묻어 있는 미소가 그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혼자서 악의 없이 즐기는 게 재미를 주기도 하니까. 세상의 나쁜 것들은 정확히 무엇이 나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