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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un 10. 2021

당연함에 대해서

왼손으로냉면 먹기

 양치를 할 때를 빼고는 왼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왼손으로 한번 식사를 해보기로 했다. 메뉴는 평양냉면. 굳이 왼손으로 갑자기 음식을 먹어보려는 이유는 굳이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 그중에서도 굳이 냉면을 먹는 이유는, 나름 이것도 도전인데 집기 쉬운 것보다 얇은 면을 먹는 게 꽤 난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 또 굳이 냉면 중에서도 평양냉면을 먹는 이유는, 이왕 도전하는 김에 평소에 안 먹는 특별한 음식을 먹으면 그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충무로에 있는 필동면옥으로 가 물냉면과 만두를 시켰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면이 얇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젓가락을 왼손으로 어색하게 집었다. 그런데 이 냉면집에는 애초에 젓가락 뿐히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숟가락도 확보해놓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도전을 하게 생겼다. 연습 겸 나름 당차게 젓가락을 들어 허공에 몇 번 움직이니 맥없이 큰 X자가 만들어졌다. 힘도 잘 안 들어가 이걸로 뭘 집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해봐야 아는 것 아니겠는가. 젓가락을 곧장 면에 가져다 대었다. 오른손으로 집을 때만큼 확실히 면이 잡히진 않지만 처음부터 많이 집으니 다행히 먹을 만큼의 면은 남았다. 호로록호로록. 평양냉면의 맛은 좋았지만 젓가락질이 영 답답하고 불편해 온전히 음미하지는 못했다. 마치 꿈에서 악당이 나왔는데 몸에 힘이 안 들어가 때려도 타격감이 없는 느낌과 조금 비슷했달까. 오른손과 같은 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도 보였다. 집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젓가락 한 짝을 만두 속에 쑥 넣는 나름의 꼼수를 부렸다. 하지만 간장을 찍어야 하는 것을 간과했다. 우선 만두를 조심스레 간장 종지 쪽으로 옮겼다. 대부분의 꼼수는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인 법. 젓가락 각도를 조금 높이니 중력을 받은 만두가 천천히 빠져나오려 했다. 결국엔 퐁당! 간장 속에서 헝클어진 만두를 겨우 다시 접시에 건져 올려 짭조름하게 먹었다. 평양냉면이 삼삼한 게 참 다행이었다.


 한 젓갈, 한 젓갈. 면이 줄어들수록 나도 젓가락을 조금씩 더 짧게 잡았다. 하마터면 중지 마디가 육수에 닿을 뻔했다. 강제로 천천히 먹게 되니 체할 일은 없었다. 안 쓰는 뇌를 써 머리가 지끈지끈했지만, 그때마다 부드러운 면이 속을 위로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부들거리며 냉면 속 고기까지 집어먹고 마지막으로 육수를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치 다시 아기가 된 기분으로 어렵게 평양냉면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밥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오른손으로 먹으면 일도 아닌 것이 말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오른손으로 먹는 것도 처음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함이 당연해지기까지의 시간을 잊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시작은 어쩌면 다 서툰 왼손 같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왼손 젓가락질도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당연한 일이 될 수 있겠지? 아, 물론 왼손만큼은 당연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래야 오른손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라고 변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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