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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Aug 05. 2024

여행의 시작

우리 가족은 작년부터 서아프리카 해안의 어느 나라에 살고 있다. 1인 당 GDP가 2,000불이 조금 넘는 개발도상국이다.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지만, 산책할 공원이 없다거나, 부드러운 구이용 소고기를 구하기 어렵다거나, 구경할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없다거나 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이곳에 온 후 크리스마스 연휴와 부활절 연휴가 지나갔다. 주변의 많은 외국인 가족들은 그 기간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우리 가족은 집을 지켰다. 사실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는 나도 마음이 동했다. 몇 개월 동안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이라 쓰고 미세먼지라 읽는다)에 목은 따갑고 가슴이 답답하던 참이었다. 남편이 터키에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아무렴, 어디든 갑시다. 적당한 비행기표를 점찍어놓고 오늘 밤 발권하리라 마음먹은 어느 날 내 눈에 걸려든 인터넷 기사가 있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216155400108


이것은 신이 보내준 메시지인가? 발권 전에 봐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편에게 기사를 보여주었는데, 매사에 긍정적인 그의 반응은 이랬다.

"4.0이면 별로 센 지진 아닌데."

기자는 지진의 위험성을 알리려 했다기보다는 한국 연구진의 능력을 부각하고 싶었던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나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믿기에, 닥쳐올 자연재해의 현장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여행은 흐지부지 되었다.


낮기온 32도를 몇 개월 더 겪으며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어디든 조금 시원한 곳이면 된다. 그때 또 남편이 제안했다. 

"스위스 어때?"

지인이 제네바에 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20대 때 융프라우를 가봤다. 직항도 없다. 무엇보다도 물가가 비싸 여행 가서도 밥을 해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다가 몇 달 전 내 손으로 쓴 버킷리스트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싶다.

두 팔을 흔들며 숲 속을 걷고 싶다.


스위스에 가면 별도 보고 숲을 걸을 수 있겠는데? 단번에 스위스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애초에 남편이 가자고 했을 땐 왜 싫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올해 들어 현재까지 이스탄불에 지진은 없었다. 남편,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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