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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Aug 05. 2024

MBTI P형의 여행 계획

남편과 나는 성격이 다르지만 계획성이 없다는 공통점 한 가지는 있다. 둘 다 확신의 P이다. 15년 전 신혼여행 때 비행기표만 끊어서 뉴질랜드에 갔다. 도착 후 공항에서 차를 렌트했다. 지도를 사서 내키는 대로 동선을 정했다. 숙소는 길 가다가 해가 질 때쯤 근처 마을에서 찾아냈다.


들리는 말로 스위스에 여행을 가려면 암만 P라도 J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여름 성수기 여행이니 비행기 표나 숙소를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남편과 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무언의 게임 같았다. 몇 주나 지났을까. 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소재로 인생 첫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지.


비행기표를 샀고 교통수단을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철도를 이용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렌터카 여행으로 정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짐이 많다.

남편이 운전을 좋아한다.


이제 동선이다. 내 위주로 짠다. 별 보고 숲을 보고 싶으니까 산에만 잔뜩 있다가 와야지. 여행 책자를 보니 트레킹 코스를 대략 북에서 남으로 아래와 같이 추천했다.

아펜첼의 제알프제→루체른의 리기→그린델발트의 피르스트 등→체르마트의 5 호수의 길 등

출처 : 저스트코 스위스, 백상현, 시공사, 2023.8.31.


그린델발트에서는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요흐를 볼 수 있고, 체르마트에서는 ‘초원의 뿔’이라는 마테호른을 볼 수 있다. 이왕에 알프스를 보러 왔으니 프랑스의 몽블랑과 이탈리아의 돌로미테도 가볼 만하다. 몽블랑은 제네바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제네바에 거주 중인 선배는 특히 돌로미테를 추천했다. 그래, 이탈리아에 가자. 스위스보다 물가가 싸다고 하니 마음에 든다. 대신 스위스 북쪽 코스는 생략하기로 한다.

제네바→그린델발트→체르마트→이탈리아 돌로미테→제네바


동선을 이렇게 짰다고 하니 선배가 조언을 주었다. 그린델발트 가는 길에 베른이 있으니 그때 몇 시간 할애해서 구경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돌로미테에서 제네바로 돌아올 때 운전이 부담될 테니, 베로나에서 1박을 하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제네바→베른→그린델발트→체르마트→이탈리아 돌로미테→이탈리아 베로나→제네바


이제 숙소를 결정할 차례다. 제네바에서는 지인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식사를 최대한 숙소에서 해결하기 위해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정했다. 그린델발트 3박, 체르마트 2박, 돌로미테 3박, 베로나 1박, 총 9박이다. 걱정했던 대로 선택지가 많지 않다. 남아있는 목록에서 별점, 가격, 위치, 무료 주차 여부를 확인 후 급히 예약했다. 성수기 가격이 무섭다. 체르마트에서 묵을 곳은 티브이도 없는 집인데 1박에 50만 원이 넘는다. 숙박에 얼마를 쓰는 거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돈 걱정을 쫓아낸다. 귀찮음을 딛고 여기까지 해내다니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이번에는 정말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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