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진지한 여행 준비
나의 관심사는 늘 나 자신이다. 이번 여행이 내 버킷 리스트에서 시작된지라 또 나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숲 속을 걷고 싶지? 나만의 순수 본능일 것 같지는 않다. 분명 누군가의, 무언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여행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단서를 찾았다.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는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매일 자연을 걷고 자연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를 썼다. 그는 알프스 여행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중에서)
그는 자연이 갖고 있는 힘을 ‘시간의 점’이라 불렀는데 그 힘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라고 했다.
자연을 보는 기쁨이 서양인의 전유물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우리 땅에 퇴계 이황(1501-1570)이 있었다. 퇴계는 산 가까이 살고 싶어서 왕에게 사표를 마흔 번 정도 던졌다고 한다. 안동의 청량산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산이 그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김훈 작가는 “퇴계의 산은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구현되어야 할 조화의 산”이라고 말했다. 산에 취하거나 산으로 도망가지 않고 현실 세상에 있겠다는 신념을 말하는 듯하다.
정철(1536-1594)은 자연 속에 있는 기쁨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관동별곡은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된 후 금강산과 관동 팔경을 유람하며 경치와 풍속을 노래한 기행 가사이다. 현대 한국어 해석을 찾아보니 학창 시절 국어 문제지에 나왔던 문구가 보인다. 그것이 금강산에 대한 묘사였음을 알고 이제야 반갑다.
아아, 조물주의 솜씨가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수많은 봉우리들은) 날려거든 뛰지 말거나 서 있으려거든 솟지 말거나 할 것이지,
부용을 꽂았는 듯, 백옥을 묶었는 듯, 동해를 박차고 오르는 듯, 북극성을 떠받치는 듯하는구나.
금강산만의 특별함이 있는가 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낸 “한국문화사” 22권은 개항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관광 행태를 설명하는데 여기에도 금강산이 등장한다.
금강산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명성을 얻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많은 젊은이가 금강산 여행을 선망하고 있으며, 금강산은 조선에서 너무나 유명하여 그 그림 같은 아름다움은 조선의 시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한편 같은 책에 이런 문구도 있었다.
점잖은 옷을 입은 성지 순례자들은 명산대찰을 찾아 여행을 하는데 남자들은 입신양명을 빌고 여인들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명승지에는 술 마시고 시를 짓고 경치를 구경하려는 사람인 묵객들이 모여든다.
“술 마시고”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10여 년 전 등산을 곧잘 다녔던 시절, 내가 본 등산객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산 후 술을 마셨다. 등산로 입구에 반주를 마실 수 있는 밥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산인가.
알랭 드 보통은 시나이 사막에서 숭고함을 느꼈다. 모세가 신의 계시를 받은 시나이 산이 그곳에 있다. 자연스럽게 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욥을 떠올린다. 욥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 앞에서 신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신이 대답한다.
"너의 이해를 벗어나는 일이다. 인간을 넘어서는 나를 받아들여라."
박완서 작가의 어느 글이 떠오른다. 아들을 잃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느냐고 신을 원망했다. 아직 정식 수녀가 되지 않은 어린 수녀님이 되물었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박완서 작가는 말문이 막히는 동시에 깨달았다.
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욥은 신의 말을 듣고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도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서도 사람들은 무릎을 꿇는다. 시나이 산, 시나이 사막과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신을 떠올릴 것이다. 특별히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을 뛰어넘는 큰 힘을 감지하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일종의 종교심을 느낄 것이다.
사실 꼭 산일 필요는 없다. 성지순례를 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곳이 산이든 들판이든 고행을 자처한다. 치유받고 은총을 얻고자 걷고 또 걷는다. 신성한 것으로 알려진 산을 오르고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 종교를 가진 사람만을 위한 행위인 것도 아니다. 자신을 찾아서 먼 길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20세기 이후 등산문학 내지 보행문학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그 내용이 표면적으로는 기록을 세우는 과정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찾는 이야기이다.
“정유정의 환상방황”이 좋은 예이다. 저자는 변비와 고산병을 이겨내고 히말라야 쏘롱라패스 종주에 성공했다. 왜 종주를 시작했나? 소설 “28” 탈고 후 더는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살에 어머니를 잃고 가장이 된 저자에게 삶은 전쟁터였고 본인은 싸움닭이었다. 본래 자기는 겁쟁이라서 전진하지 않으면 고꾸라질까 봐 두렵다. 쏘롱라패스에 도착했고, 돌아가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은 겁쟁이가 아니라 타고난 싸움닭이라고 결론 내리고는 이내 글을 쓸 수 있었다.
정철이 그랬고 워즈워스가 그랬듯 자연에 있으면 기쁘기 때문에 나는 숲을 찾아간다. 나무 사이를 걸으면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나무 밑동도 가끔 멋지지만 수많은 초록색 잎들이 다 함께 내뿜는 에너지는 항상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나 더, 자연 속에서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나는 숲을 찾아간다. 20대 어느 밤 그리스 바다 위에서 하늘을 보았다.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혼자인데 외롭지 않았고 마음이 따스해졌다. 숭고함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그런 감동을 느꼈다. 고요한 내가 거대한 밤하늘과 1 대 1로 만났기에 가능했던 경험이다. 알프스에서 다시 그런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