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어렸을 적 엄마가 김치를 만드시고는 한 입에 들어가게 조금 찢어서 맛이 어떤지 봐달라고 하시곤 했다. 맵고 짠 김치를 굳이 입에 넣기 싫었지만,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한 입 먹고 형식적으로 “맛있어”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되면서 몇 달에 한 번씩 본가에 들르면 엄마는 꼭 김치를 싸 주셨다. 하지만 나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았기에 그 김치는 자취방 작은 냉장고에 방치되곤 했다. 시어 빠진 김치는 엄마가 다시 가지고 내려가기도 하셨다.
이런 주제에 결혼할 때 김치 냉장고를 샀다. 친정 엄마에 더해 시어머니까지, 만날 때마다 새로 담근
김치를 싸주셨다. 겨울이 되면 김장 김치도 꼭 보내 주셨다. 남편이 김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냉장고에 김치가 채워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양가 어머니께 김치 좀 그만 달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늘 그랬으면, 그때가 좋은 때였는지 몰랐을 거다. 언제부터인지 손님상을 차리고서 절인 배추처럼 지쳐버린 시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김장 후에는 꼭 몸살이 나셨다. 그제야 조금 철이 든 우리는 김장하실 때 돕겠다고 어머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돕는 것도 깜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첫해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갔는데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나 있었고 김치는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민망함을 숨기고 대야와 소쿠리만 씻고 왔다. 다음 해에는 내가 몸살로 열이 나 남편만 보냈다. 그 이듬해에야 아침 일찍 가서 양념 버무리는 일을 도왔다. 그때는 나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마라톤 결승선에서 마지막 100미터만 뛴 것이나 다름없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외국에 1년 머물렀다. 남편이 요리를 맡았다. 남편은 좋아하는 김치를 먹기 위해 직접 김치를 담갔다. 물기 뺄 채반도, 속을 넣어 버무릴 넓은 양재기도 없이 작은 주방에서 김치를 만들어냈다. 놀랍게도 맛이 괜찮았다. 그는 한밤중에 김치를 담그고는 했다. "도와줄래? 옆에서 볼래?" 하고 물어본 적도 있었는데,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고 잠을 청하곤 했다.
재작년부터는 내가 휴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먼저 모범을 보인 바람에 나도 당연한 듯 김치를 만들게 되었다. 조금씩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가족들이 맛있다고 할 때는 기쁨을 느낀다. 아주 가끔 이웃과 김치를 나눠 먹을 때면 내가 몇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오늘 아침 열무김치를 만들었는데, 한국을 떠날 때 큰 김치통에 가득 담아왔던 천일염이 몇 줌 남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지난 2년 굵은소금 한 통을 다 쓸 만큼 김치를 만들었구나. 가나에서 지내는 시간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초조하기까지 했는데 비어 가는 소금통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밥벌이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더라도, 주말 저녁에는 뚝딱 집밥을 차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먹을 음식을 원하는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되겠구나. 가나에서 찾아야 할 보물이 집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이 방법 저 방법으로 해 먹다가 정착하게 된 레시피를 따로 정리해 두기로 한다.
열무김치 만드는 법 (만개의 레시피 임루시님 레시피)
* 소금에 절일 필요 없어 배추김치보다 간편하다
주재료:
열무 한 단
부추 또는 쪽파 한 줌
양파 1개
찹쌀풀 재료:
찹쌀가루 한 컵, 물 세 컵, 물 1700 cc
양념 재료:
고춧가루 9큰술
다진 마늘 3큰술
생강가루 1큰술 (원래 레시피는 다진 생강 1큰술인데 생강가루로 대체, 농축되어 있을 것 같아 조금 적은 1큰술)
굵은소금 5큰술
매실액 4큰술
1. 찹쌀가루 한 컵과 물 세 컵을 섞어 끓는 물 1700 cc에 넣어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꺼 식힌다
2. 열무를 씻어 물기를 뺀다. 부추 또는 쪽파와 양파를 썰어 둔다
3. 양념을 만든다
4. 찹쌀풀이 식으면 양념, 부추, 양파를 넣어 섞는다
5. 열무에 4를 넣어 섞은 후 뚜껑 닫아 하루 보관 후 냉장고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