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서 일상생활 중에 영어로 대화할 기회가 간혹 생긴다. 주로 둘째 아이 어린이집 친구들의 생일파티나 플레이데이트에서 만나는 부모들과의 대화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어떤 면에서는 학교 수업보다도.
마흔에 외국에서 석사 공부를 했다. 내가 만난 교수진은 모두 예외 없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배려하여 표준어로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강의했다. 수업 중에는 강의 슬라이드가 떠 있으니 중요한 어휘는 거기에 다 있었다. 읽을 자료도 미리 알려주니 그것까지 읽고 들어가면 강의시간에 길을 잃고 헤맬 일은 없었다.
토론 수업도 비슷했다. 주제와 읽을거리가 지정되어 있었다. 내가 준비하고 이해한 범위 안에서 분위기 보아가며 적당히 몇 마디 얹으면 되었다. 발표 수업도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를 하면 되었다.
일상 대화는 복병이다. 지난 금요일 둘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이라 알고 지내는 몇몇 엄마들과 “커피 프라이데이“ 시간을 갖게 됐다. 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나올 텐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휴가나 어린이집 일정 따위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될 텐데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나눌 대화에 앞서 긴장감을 안고 커피숍에 간 것이다.
한 시간 정도의 짧고 캐주얼한 시간이 흘러갔다. 엄마들은 모두 배려심 있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나를 특별히 배려해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진 않는다. 어쩌면 내가 편하고 자연스러운 척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대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해했지만, 간혹 구체적인 단어나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있었다. 내가 말할 때도 한국어로 했다면 훨씬 풍부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영어로는 아무래도 다소 밋밋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게 된다. 못 견디게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마냥 즐겁지만도 않은 시간이었다.
이런 계기에 접하는 새로운 영어 표현들은 유독 머릿속에 쏙 들어온다. 채팅창에서 아일랜드인 엄마가 "Oh sugar!"라고 했을 때 '웬 설탕?'하고 의아해하며 찾아보니, 'Oh f**k!'의 순화된 표현이란 걸 알게 됐다. 미국인 엄마가 "I stink at checking the school app"이라고 했을 때도 '무슨 냄새?' 하며 찾아봤더니, '나는 학교 앱 확인 잘 못해'라는 뜻이었다. 어릴 때 가장 먼저 배운 영단어 중 하나일 ‘study'에서 파생된 'studious'(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뜻하는 형용사)라는 단어도 엄마들과의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들과 헤어져 가게를 나서며 둘째 아이를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던 마음, 2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만 좀 적응해 주길 바라던 마음보다, 나를 닮아서 내성적인 내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왕년에 영어공부를 할 만큼 했던 마흔 중반의 나도 이런데, 수줍음 많은 다섯 살 아이 입장에서 이질적인 환경을 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해 보인다. 어린이집 가기 싫어 아침마다 실랑이하고, 한국인 친구와 집중적으로 노는 우리 아들을 이해한다. 아들아, 이곳에서 건강히 매일 어린이집을 다녀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