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서 처음 들은 말
미국 심리학자 할로우가 침팬지로 애착 실험을 했다. 한 아기 침팬지에게 두 가지 유형의 인형 엄마를 우리에 넣어 주었는데, 하나는 젖병을 장착한 철사 인형이고 다른 하나는 먹을 것은 없지만 푹신한 헝겊 인형이었다. 침팬지는 먹을 것이 없는데도 푹신한 인형 엄마 곁에 머물렀다고 한다 (배고플 때만 잠시 철사 인형 엄마에게 갔다).
아기는 안아주어야 하나? 첫째를 낳아 보니 과연 그런 듯했다. 첫째는 눕히면 잠이 깨서 우는 아기였다. 낮잠은 거의 내 품에서 잤다고 보면 된다. 세 살이 되었을 때 베트남 여행을 갔는데, 아이가 낯선 환경을 너무 어려워하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 그 더위에 하루 종일 안고 걸어 다녔던 기억도 있다. 둘이 한 몸인 듯 밀착해 땀범벅이 되었던, 고되었던 기억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맙게도 둘째는 누워서 잠을 잘 잤다. 그래서 한결 수월하게 키웠는데… 그때 덜 안아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다섯 살 둘째 아이는 강아지 같다. 안아 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 내 품을 파고들어 안긴다.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애교가 넘친다. 내 뺨에 뽀뽀를 하고 나서야 자려고 눕는가 하면, 내 손등을 자기 입에 가져다가 뽀뽀 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저런 아이를 낳았는지 신기하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말한 적이 없어서다. (아기 때는 엄마 등에서 떨어지질 않아 나를 포대기로 업은 채 앉아서 밤잠을 주무셨다는 무시무시한 일화를 들었는데… 그때 충분히 안겨서 그랬던 건가 여하튼) 나는 엄마 팔짱을 끼고 걸어 다닌 기억도 없다. 아빠와는 말할 것도 없다. 흔히 말하는 애교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 나다.
첫째 아이가 이걸 또 닮았다. 자기 전에 안아주면 "덥다"며 돌아눕는 아이였다.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첫째가 얼마 전, 토라져 있다가 "엄마 안아줘" 한마디를 내뱉고는 내 품에 한참을 안겨 진정되는 일이 두어 번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방을 나와서 첫마디를 뱉었는데 "엄마 안아줘"였다. 놀라서 꼭 안아주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강아지 한 마리로 변하려는 것일까? 아홉 살이 되고 엄마 품이 좋아지기도 하나? 그 말이 오전 내내 잊히지 않는다. 첫째의 그 말에 내 존재의 이유가 굳건해진 느낌이 든다. 안아 달라는 말, 내가 평생 써본 적 없는 말, 그 말이 계속 맘을 맴도네.
친정엄마한테 가서 안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친정아빠한테는 그 말이 안 나올 것 같아 내가 먼저 덥석 안아드리고 싶다. 당장 오늘 남편이 퇴근하면 “안아줘”라고 말해봐야겠다. 화들짝 놀라려나? 어디 아픈 줄 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