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잡담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어린이라는 세계

by RAMJI


이틀 전 아침, 너의 아빠는 벌써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동생과 현관 바닥에 앉아 신발을 신느라 발을 꼬물거리고 있었지. 너는 서두르는 법이 없지. 손가락을 뒤꿈치에 갖다 대고 힘주어 발을 밀어 넣고, 벨크로를 꼼꼼하게 채웠다.


"늦었다, 어서 가자."라는 나의 말에서 너는 엄마의 재촉하는 마음을 느꼈을까? 최대한 감정을 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왜 이렇게 꾸물거리는 걸까, 빨리 신을 수 없을까'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지금 엄마는 『어린이라는 세계』란 책을 읽고 있어. 책을 쓴 분은 신발 신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주목했어. 어린이들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줬어. 다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라고 했지. 그 덕분에 이틀 전 신발 신는데 열중하던 너희 둘의 뒷모습이 생생히 그려졌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참 멋지다. 신발도 혼자 신고.


몇 년 전, 네가 지금의 동생보다도 어렸을 때, 한 번은 왼쪽 오른쪽 신발을 바꿔 신고는 맞게 신었다고 고집을 부렸어. 혹여나 너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말기를. 그 모습을 보다가 화를 낸 엄마가 더 부끄럽거든.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에 가장 먼저 밑줄을 쳤어. 읽으면서 너에게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거든.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


너는 동네 엄마들에게, 네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하지. 엄마는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사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단다. 혹시 네가 잘난 척하는 아이가 되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거든. 이제야 엄마는 그것이 너의 귀여운 허세였음을 알았어. 너는 어린이인데, 나는 너를 어른인 양 대한 적이 많다는 걸 알겠어.


정수리에서 예전과는 다른 체취를 내기 시작하는 너를 보며, 늦게라도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너를 어린이로 대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어 감사하다.


칭찬받고 싶은 너, 하지만 숙제하기 귀찮은 너, 밥 먹으라고 부르면 책을 집어드는 청개구리 같은 너, 동생에게 종종 질투를 느끼는 너, 엄마가 머리카락 쓸어주는 게 좋다는 너, 학교 끝나고 나를 만나면 “엄마!”하고 반가워하는 너, 하지만 엄마 손 잡고 걷다가도 학교 친구들이 보이면 스르륵 손을 빼내고 혼자 앞서 걸어가는 너. 아직은 어린이인 너의 소중한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할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비원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