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 신트라 페나성
하루는 외곽을 가자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바다를 좋아할 테니 카스카이스에 갈까 했는데, 전날밤 첫째가 성이 많은 곳에 가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성을 지키는 전쟁놀이를 하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신트라로 가기로 했다. 남편이 여행책자를 읽어보더니 다 가기는 어려울 것 같고 페나성과 헤갈레이아 별장 두 곳이 우리에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동의!
남편의 진두지휘로 기차를 타고 성공적으로 신트라에 도착한 우리, 그러나 우리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고, 기차역 화장실이 문을 닫은 것을 알게 되었다!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에서 환전을 안 해 화장실 쓸 동전이 없어 낭패를 봤던 우리, 그래서 이번에 유로화로 환전하자고 달러 현금을 챙겨 온 우리, 그런데 아직까지 환전을 하지 않은 우리! 역 건너편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핫초코를 주문해 마시며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리고 ATM기를 찾아 거금의 수수료를 내고 유로화를 조금 인출했다. 이러느라 30분 이상 지체한 듯?
페나성에 어떻게 갈까 하다가 툭툭을 타기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근데 둘째 나이가 어려서 툭툭을 탈 수 없다네? 툭툭 사업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나타난 한 남자. 그는 신트라의 다섯 유명 명소에 호카 곶, 카스카이스까지 하루에 데려다준다고 단돈 150유로만 내라고 했다. 우리는 콜을 외쳤고 그때가 거의 12시였다. 기사는 미국식 영어를 쓰는 수다스러운 젊은 남자였다. 조니뎁이 영화를 찍었다는 곳에서 우리를 내리게 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는데, 그냥 페나성으로 바로 갔으면 싶었지만 웃으며 응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시간을 끄는 그의 전략이었던 것!
페나성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 기운이 없던 나는 자판기에서 스낵을 뽑아 먹었는데 사람도 많고 조작이 서툴러 거기서 또 한 30분을 허비한 것 같다. 그래도 곧 기운을 차리고 성을 올랐다. 페나성은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귀여운 알록달록 동화나라 세상 같았다. 아이들은 예고한 대로 전쟁놀이를 시작했다. “적군이 쳐들어온다!”를 외치며 그들만의 가상세계로 들어갔다. 남편은 아이들 사진 찍는 것은 애당초 포기하고 내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성벽에 서서 햇볕 아래 탁 트인 바다 전망을 보니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래, 이러려고 내가 여행을 왔지. 몸만 옆에 (정신은 가상세계에) 있는 아이들은 성벽 아래로 활을 쏘는데 여념이 없었다. 성을 내려올 때는 라고스(호수) 길로 왔는데 가장 좋았다. 오래된 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이끼로 초록색빛이 된 호수를 따라 걷는 내 취향의 산책길.
관광을 마치니 2시, 우리는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기사에게 일몰 시간에 맞춰 호카곶에 갈 수 있겠는지 물었더니, 무리이고 가더라도 구름 때문에 해를 보기 어려울 거라고 부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헤갈레이라 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비수기인데도 차가 막혔다. 중간에 차에서 내려 걷기로 하고 빵으로 허기를 달래 가며 어렵게 별장에 도착했는데 오늘 표는 모두 매진되었단다! 예매해야 한다고는 상상을 못 했다. 둘째는 다리 아프다고 울고, 우리는 계획을 수정했다. 신트라 관광을 끝내기로 말이다. 다시 만난 기사에게 역에 내려달라고 하고 60유로를 지불했다.
호갱님이 되는 위기에서 어렵사리 탈출한 우리는 여유 있게 5시 기차를 탔고 6시 전에 호시우역에 내렸다. 기차에서 곤히 잠들었던 둘째는 잠이 덜 깨어 칭얼칭얼 하여 남편이 업었다. 이번 여행도 남편이 고생이 많다. 호시우의 밤거리는 크리스마스 조명과 인파로 활력이 넘쳤다. 이틀 전 자라에서 옷 살 때와 같은 공간 다른 느낌에 마음이 들떴다. 우리는 브라질리아라는 노천식당에 자리를 잡고 주린 배를 채웠다. 또 바칼라우 요리를 주문했고, 빠에야 바칼라우는 무슨 조화인지 또 맛이 있었다. 강황을 넣었는지 노란빛이었는데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할 뿐이다.
노천식당에 비치된 휴대식 난로를 보고 불멍을 한 덕분일까, 식사가 맛있었던 덕분일까. 아이들이 다시 웃는다. 넷이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정류장에 선 내 머리 위에 볼록한 반달이 떠있었다. 첫째가 내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행복하다. 남편도 그럴 것이다. 다리 아프다고 절뚝이면서도 대부분 혼자 씩씩하게 걸어낸 둘째 장하다. 그러고 보니 첫째는 어엿한 사진 촬영사에 여행 일정 결정을 주도하지 않나, 이번 여행에서 기여도가 보통 높은 것이 아니다. 너희 정말 많이 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