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6시간 운행할 차와 기사를 20달러에 구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그리고 (일본의 지원으로 최근 열었다는) 그랜드 이집션 뮤지엄(GEM) 관람을 위해서였다.
기사는 창을 열어놓은 채 운전했다. 날씨가 선선해서이기도 하고 주된 이유는 휘발유를 아끼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문제는 대기질… 내 기준으로는 재난 수준이었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달라고 요청할까도 생각했으나, 낡은 차 상태로 미루어보아 에어컨을 튼다고 딱히 공기가 깨끗해질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두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도시의 매연과 먼지를 무방비로 들이마셨다.
호흡기 건강에 딱히 도움되지 않을 얕은 숨을 쉬다가 문득 오른편 차창 밖 무리지은 건물 뒤편 너머에 서 있는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먼지인지 안개일지 모를 누런 공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도 관광으로 피라미드를 보러 왔다고 한다. 5천 년 전 만들어놓은 거대한 무덤을, 2천 년 전 인류도 2024년 지금의 나도 부러 찾아가 두 눈에 담고 감탄했다는 점에서, 고대인에게 난생처음 동질감을 느꼈다. 앞으로 2천 년 후에도 인간이 피라미드를 볼 수 있을까. 우리가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을까.
피라미드 진입로는 좁았고 차로 가득 찼다. 여름에 왔으면 어쩔 뻔했나. 더위와 인파와 아이들의 짜증에 본격 구경도 전에 지쳤을 것이다. 12월에 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추천받은 대로 먼저 파노라마 뷰에 가서 피라미드 셋을 모두 사진에 담고, 피라미드 코앞까지 내려가 거대한 돌덩어리를 만져보았다. 큰아들은 피라미드에 놓을 돌을 거인족이 등에 지고 옮겼을 거라는 어느 유투버의 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어서 스핑크스와 뮤지엄을 겉핥기식으로 둘러보고 관광을 마쳤다. 남편이 스핑크스의 상체와 하체를 이루는 돌이 서로 다르다는 등의 흥미로운 설명을 해주었지만, 인파 때문인지, (현지 상인의 지나친 적극성에 맘이 상해) 툴툴대는 아들 때문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GEM에서도 유물에 대한 감흥보다는 일본이 박물관을 신경 써서 잘 지어주었다는 감상평을 남편과 서로 나누었다.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였다면 재미도 남는 것도 더 있었겠지만 어쩌리, 두 아이에게는 무리인 것을. 카이로에 왔으니 피라미드는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하루 일정을 이렇게 마쳤다. 숙제를 끝낸 기분.
감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이날 저녁부터 아이의 기침이 다시 시작되었다. 남편도 목이 따갑다고 했다. 밤 내내 기침 소리를 들으며 어서 카이로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래먼지는 가나에서 경험한 것으로 족하다. 시와 오아시스도, 룩소르 유적도 가지 못했고 리조트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지만, 나는 만난지 이틀 만에 먼지에 덮인 이집트와 영영 이별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