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 잊지 못할 성탄절

아테네

by RAMJI

전날 밤 아테네에 도착해서 늦게 잠들었다. 자는 내내 추위를 느꼈다. 온풍기를 켰으나 미약한 온기는 금세 창 틈과 벽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난방효율이 이렇게 낮아서야… 기후변화 때문에 갑작스레 추워져 아직 대응하지 못한 걸까. 알 수 없다. 다행히 아이들은 간간이 기침을 했어도 잘 자고 일어나, 용케도 그리스까지 배달된 포장도 되지 않은 산타의 선물에 크게 기뻐했다.


세 가족 아홉 명이 함께 하는 그리스 여행이 본격 시작되었다. 아침으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숙소를 나서 옴모니아(Omonia) 역까지 걸었다. 차고 깨끗한 공기에 가슴이 뻥 뚫렸다. 시력이 좋아진 게 아닌지 착각을 부를 정도로 하늘이 선명했다.


지하철역을 내려 신타그마 광장으로 갔다. 마침 11시가 되어 의회 앞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했다. 영국의 근위병 교대식을 떠올리면 안 된다. 다섯 명의 군인이 슬로 모션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저 움직임에 뭔가 의미가 있을 텐데… 검색해 볼 열정은 없었다. 움직임의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 군인 특유의 절도는 느낄 수 없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이내 관심을 잃고 비둘기 밥 주는데 전념했다.


바로 옆 국립정원(National Garden)으로 향했다. 이국적인 초록색으로 가득한 공원이었다. 한동안 맡지 못했던 나무 냄새가 찬 공기와 어우러져 내 코와 폐로 들어와 상쾌함을 주었다.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초록 새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한참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느라 조용해졌다.


아직 덜 놀았다는 아이들을 설득해 New Era라는 그리스음식점을 찾아 야외석에 앉았다. 수블라키도 무사카도 내 취향에 맞아 맛있게 먹었다. 다시 걸어 모나스트라키 광장을 지나다가 남편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아이들 털모자와 내 목도리를 샀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내복을 챙겨 올 걸 후회가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크리스마스 팩토리였다.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큰 아이는 산타 옆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형이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에어하키를 즐기는 사이,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게 된 둘째는 눈에 띄게 밝은 표정으로 회전목마를 탔다.


팩토리를 나와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인 후, 아이들이 제 발로 더 걷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숙소로 돌아온 9인은 Wolt 앱으로 베트남음식과 터키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하루를 마감했다.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데다가 흔한 트리장식도 해놓지 않아, 집에 있었다면 맹숭맹숭 여느 날처럼 지나갔을 텐데, 올해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두고두고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