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 버려진 신들

아테네

by RAMJI

아테네에서 보내는 마지막날이다. 세 가족은 각자 자유일정을 갖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첫째와 내가) 어제 못 간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가기로 했다. 첫째의 친구 S도 함께.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니, 델피로 가던 길에서와 비슷한 시각적 자극에 마음이 들떴다. 입체적인 구름을 잔뜩 안은 하늘은 잠시 비를 뿌리더니 다시 햇빛을 내려보냈다. 흐린 날씨인데도 대기에 필터를 끼워놓은 것처럼 선명히, 멀리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탁 트인 전망이 탁월했다. 역시나 신을 위한 장소로 걸맞은 곳이었다. 풍광에 넋을 놓은 사이 둘째를 잃어버릴 정도로 말이다(둘째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아크로폴리스를 뛰어다닌 일을 생각하면 잠깐이었지만 아찔하다).


아크로폴리스는 한창 재건 중이었다. 바닥에 흐트러진 돌무더기는 맞추어지기를 기다리는 레고 조각처럼 보였다. 모습이 남아있는 신전은 신전대로,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 자리는 또 그 나름대로 멋스러웠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물일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라고 한다. 왜 하필 아테나? 아이들과 읽은 만화 내용이 생각났다. 포세이돈과 아테나가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경쟁하다가 승부를 시민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시민들의 마음을 살 선물로 포세이돈은 샘물을,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내밀었다. 시민들은 기름으로 불을 밝힐 수 있는 올리브 나무를 선택했고 아테나가 이겼다. 그래서 포세이돈 신전이 아닌 파르테논이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이겠구나.


델포이 유적지에도 시어터(반원형 극장?)가 있었는데 이곳도 그랬다. 어째서 신전과 극장이 한자리에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신을 위한 재례를 이 극장에서 지냈다고 한다. 관객석의 경사가 가팔랐다. 여기에서 공연을 본다면, 스피커가 없어도 소리의 울림이 클 것 같고 그래서 관객의 몰입도가 높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아테나 대성당으로 갔다. 아이들은 성당 앞에서 비둘기를 쫓을 뿐이었고, 어른들은 눈치껏 번갈아가며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나왔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당을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한 번도 머릿속에서 조합해 본 적 없었던 자주책 칠과 금박이 서로 썩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많은 방문객이 좌석 입구에 위치한 금속 소재의 그림에 머리를 대고 뭔가를 되뇌는 작은 의식을 치렀다. 정교회 교회를 처음 본 내게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인들은 유일신을 믿는다. 고대의 신들은 언제 버려진 것일까? 그리스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부터일까?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를 보니 기원전 6세기부터 징조가 있었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에 쓰인 작품인데, 적어도 당시 그리스 로마인들은 신들의 존재를 인정했던 것 같다 (참고로 당시 저술가들은 신화 속 이야기가 기원전 1500년~120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 일부 그리스 철학자, 지식인들이 신화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상가는 신화는 고대사의 잊힌 일이며 신들은 잊힌 인간 왕이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신화가 불건전하고 아이들에게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그렇긴 하다? 우리 집 네 살짜리 둘째도 좋아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화가 대중의 아편이라 말했다 한다.

에피쿠로스학파에게 신화는 인간의 무지와 공포의 소치일 뿐이다.

스토아학파는 신화를 표면적 의미 아래에 이면적 의미가 있는 수사법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유일신을 믿는 사람이 대세가 되었고, 이교행위는 금지되었던 것이다. 짧은 대성당 관람으로 고대신화에 대한 환상 내지 설렘을 자연스레 떨쳐내고 평소의 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행을 일단락 지을 때가 된 것이다. 저녁이 되었고 일행 9명은 공항으로 이동했다. 한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고, 두 가족은 크레타 섬으로 넘어가 여행을 계속할 것이었다. 평생에 다시없을 세 가족의 그리스 여행이 끝났다. 감사한 순간이었다. 모두 안녕히.

이전 05화12.28. 여행지에서 아이가 아플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