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가까이 제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아이들에게는 여행이 필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알프스 대자연에 감탄하지 않습니다. 기자의 피라미드 유적을 보고도 그 규모에 압도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보았느냐고요? 몇 년 전 런던에서 라이언킹 뮤지컬을 보여주었는데… 지루했다는 한마디를 남기더군요.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여행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놓고 갈 수는 없지요. 그래서 여행 중에 아이들에게서 재미없다, 심심하다, 놀아달라 소리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정리해 봅니다. 이미 수많은 선배 동료 부모님께서 체득하신 노하우겠지만요.
아이의 친구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세요 ⭐⭐⭐⭐⭐
놀아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노느라 바쁘니까요. 어디를 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만의 가상현실 속에 있으니까요. 참고로 저는 최근의 여행에서 식사 때와 밤잠 잘 때만 첫째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네요. 여행 중에 3인 가족 체험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죠.
단, 친구와 케미가 맞지 않으면 계속 싸워대는 통에 아이들이 고자질 병에 걸리는 점 유의하세요.
"엄마, XX가 놀렸어."
(잠시 후)
"엄마, XX가 밀었어."
(이후 무한반복)
물가에 가세요⭐⭐⭐⭐⭐
호수도 좋고 바다도 좋습니다. 물가에서 아이들은 시간관념을 잃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 모래나 돌멩이를 만지작거릴 겁니다. 던지기도 하겠죠. 곧 물에 손을 담글 거예요. 잠시 풍경을 구경하고 다시 아이를 돌아보면 어느새 양말을 벗었을 겁니다. 혹은 이미 바지를 걷은 채 물속에 들어가 있을 지도요. 날씨가 제법 쌀쌀해도 춥다는 말이 없습니다. 호수에서는 물고기를 잡겠다고, 바다에서는 파도에 맞서겠다는 일념으로 그간 어디서도 발휘한 적 없는 성실함과 집중력을 보여줍니다.
놀이터를 끼고 있는 관광지를 방문하세요⭐⭐⭐⭐⭐
스위스 마터호른의 라이제 호숫가, 그리스 아테네 중심가의 국립 정원에는 놀이터가 있습니다. 이 관광지들은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어른도 가 볼 만한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어른들은 (교대로?) 주변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요.
오락실도 나쁘지 않아요⭐⭐⭐
여행 가서 무슨 오락실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어른도 아이도 즐길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더라고요. 아이와 에어하키 시합을 했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덧붙여,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어차피 비행기를 타게 되니 팁이랄 것도 없지만, 저희 아이들은 비행기 이착륙하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합니다. 기내 모니터로 (못 보던) 만화를 보고 (못 하던) 게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최신 기종 비행기를 선택하면 아이들에게 더 즐거운 경험을 안겨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저는 최저가가 우선입니다만).
여행지에 가서도 놀이터를 가야 할까요? 모두 비슷한 놀이터이지만 여행지의 놀이터는 달랐습니다. 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크레타 바닷가의 놀이터에서 저는 어린아이처럼 힘껏 그네를 탔습니다 (참고로 무척 튼튼한 그네였고 저는 체격이 작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엄마는 그네를 밀어줄 뿐이었는데, 이곳에서 엄마와 나란히 그네를 타게 되자 아이가 까르르 웃었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쳤고 저도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여행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뜨리고,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고, 무심코 스쳐가는 순간들이 특별해지는 것. 그래서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여행이 필요 없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겠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가기 싫다 할때까지요.